드로잉 여행

100일간 글쓰기 57일차

by 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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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민하던 중 몇 년 전부터 여행 중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여행지의 카페에 앉아 '오랜만에 손이나 풀어볼까' 정도로 시간 때우려는 식이었는데, 묘한 재미를 느끼며 본격적으로 그리게 되었다. 그 묘한 재미라는 건 물론 그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있겠지만, 그림에 집중할수록 그냥 다니기만 했을 땐 몰랐던 그 카페 내의 분위기 사람들 말소리, 그 날의 날씨 냄새 느낌 같은 것들이 너무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 동네가, 여행이 선명해진다. 그리고 그러다 문득 어느날 그 그림을 꺼내 보았을 떄 그날의 느낌과 감정이 생생히 살아나는 것, 나는 나만의 여행법을 찾은 듯 했다. 이제는 주객이 전도되어 그림을 그리러 여행을 다닌다.


그림을 그리려면 주변을 세심하게 살펴보며 마음에 드는 풍경을 샅샅히 찾아야 하는데, 그러면서 더 자세히 그 동네를 들여다보게 된다. 가상의 프레임을 머릿속에 그려 그 안에 풍경을 넣어 본다. 사진도 찍는다. 그러면 그 동네가 머릿속에 스며든다. 밤에는 어딘가 그 동네에서 가장 멋진 펍 같은 곳에 가서 낮의 풍경을 떠올리며 집요하게 그림을 그린다. 그러면서 로컬들의 소소한 이야깃거리를 듣는다. 고민거리, 웃음거리, 훔쳐듣다 혼자 웃기도 하고, 심각해지기도 한다. 무슨 궁상인가 싶을 수 있지만 잠들 때 쯤엔 하루가 흡족해진다.


그토록 스트레스를 주던 나의 오랜 전공이, 여행지에서 취미로 다시 만났더니 너무 반가웠다. 나는 그림에 대해, 내내 이런 관계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에 드는 인생을 찾아가는 중이다. 요즘 나는 이렇게 힐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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