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회피하는 아이
(로렌츠 파울리 저, 비룡소, 2011)
그림책을 펼치면 커다란 곰이 빨간 방석을 꼭 안고 웅크리고 자고 있어요. 산쥐는 그 뒤에서 나뭇가지를 가지고 부지런히 피리를 만들고 있지요. 심지어 딱따구리에게 부탁해 구멍을 내달라고 합니다. 저는 산쥐는 자신이 재미있는 것을 위해 창의적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7번 유형이 떠올랐어요. 곰은 언제나 평화로운 9번 유형의 아이이죠.
마치 ‘애착 이불’ 같은 빨간 방석에 앉아 쉬고 있던 곰 앞에 산쥐가 피리를 불며 나타납니다. 피리를 불어보고 싶은 곰은 자기의 빨간 방석과 산쥐의 피리를 바꾸자고 하죠. 하지만 산쥐의 손에 꼭 맞게 맞춤 제작된 피리는 곰이 불기에는 너무 작습니다. 곰은 속상했죠. 멋진 피리가 생겼으나 불 수가 없으니까요. 그러자 산쥐가 말했어요. “나는 피리를 잘 부니까 네 피리를 주면 내가 멋진 노래를 들려줄게. 그럼 너도 좋고, 나도 좋잖아.” 그렇게 곰은 자신의 피리를 산쥐에게 줍니다. 산쥐는 피리를 불어요. 곰의 빨간 방석에 앉아서 말이지요. 산쥐가 노래 한곡을 연주하고 나더니 같이 세상 구경을 가자고 해요. 대신 목말을 태워달라고 하죠. 곰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더니, 머리 위해 방석을 올려놓고, 방석 위에 산쥐를 앉혔어요. 그렇게 둘은 함께 세상 구경을 하러 길을 떠납니다.
많은 엄마들이 그림책을 여기까지 보고 나면 화가 냅니다. 간혹 아이들 중에도 공평하지 않다면서 화를 내는 친구들도 있어요. 피리를 다시 가져왔으면 방석은 돌려줘야 한다고 말이죠. 사실 산쥐가 좀 이기적인 것은 맞죠. 절대 손해 보지 않으려는 성격이 얄밉게 느껴집니다. 저는 그림책을 보면서 곰이 답답했어요. 방석도 갖고 피리도 가진 산쥐가 이제는 목말을 태워달라는데 그걸 왜 또 들어주는 걸까요?
9번 유형은 에니어그램의 왕관이라고 불립니다. 이들은 때 묻지 않은 인간의 본질을 보여주는 유형입니다. 솔직하고 악의가 없기에 사람들의 신뢰를 받습니다. 그다지 큰 욕구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나도 좋고 다른 사람도 평화로우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9번 유형의 아이들은 자기 것인데도, 친구와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 손해를 보는 것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단순하게 보면 참 속상하고 답답하죠.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9번 유형의 아이들은 상대방을 긍정적으로 해석합니다. 이들은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친절하고 관대하죠. 순진하고 천진난만하며 악의가 없는 이 유형의 아이들은 모두가 자기처럼 착하고 때 묻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있어 약삭빠른 친구들에게 종종 이용당할 때가 있어요.
다시 그림책으로 돌아가 볼까요? 곰과 산쥐는 여행을 떠났죠. 길을 걷다가 산쥐의 피리 소리에 맞춰 곰이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산쥐는 곰이 춤추는 걸 보니까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산쥐가 가지고 있던 행운의 조약돌을 줄 테니 산쥐를 위해 춤을 더 춰 달라고 하죠. 곰은 산쥐를 위해 춤을 추고 또 산쥐와 함께 춤을 추었어요. 그리고 저녁이 되어 숲으로 돌아가는 길에 곰은 행운의 조약돌을 하늘로 던지죠. 떨어지기 전에 다시 잡으려고 했으나 그만 개암나무 사이에 걸려 버렸어요.
깜짝 놀란 곰이 개암나무를 마구 흔들죠. 그 바람에 개암 몇 개가 떨어졌어요. 산쥐가 신나서 소리쳐요. “곰아, 흔들어, 더 흔들어! 개암이 다 떨어질 때까지 흔들어 봐! 개암을 많이 떨어트려 주면 이 예쁜 조약돌을 줄게. 방금 전에 하늘에서 떨어졌거든. 그럼 너도 좋고, 나도 좋잖아.”
곰은 그건 내 행운의 조약돌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있는 힘을 다해 개암나무를 흔들어 줍니다. 산쥐를 위해서 말이죠. 그리고는 다정하게 산쥐에게 말해요 “친구야, 받아, 선물이야. 내 행운의 조약돌을 줄게. 나는 선물하면 기분이 좋거든. 그러면 너도 좋고, 나도 좋잖아.”
9번 유형의 아이들은 포용력이 큽니다. 늘 잘 수용해주고 인내심을 보여주어요. 이런 폭넓은 이해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어떻게 해도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믿음을 줍니다. 이런 믿을만한 기질은 일부 친구들이 부당한 이득을 챙기도록 만들기도 하죠. 그리고 9번 유형의 아이들은 그러한 사실을 알아도 묵묵히 지켜보기만 합니다. 마치 그림책 속 산쥐의 이기심을 바라보는 곰처럼 말입니다. 그 이기심마저 수용하여 산쥐를 친구로 만드는 곰처럼, 부드러운 인내심으로 친구를 변화시키는 아이들입니다.
이 유형의 아이들은 편견 없이 모두와 두루 잘 지냅니다. 내면의 단호함과 달리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강요하지 않는 태도는 주위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어 줍니다. 부드러움과 확고부동함과 진실함으로 상대방을 무장해제시켜주며 상대방의 노여움도 가라앉혀 주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런 특성으로 불안이 많은 6번 유형의 친구와 분노가 많은 8번 유형의 친구 옆에 있으면 그 친구들을 안정시켜 줄 수 있습니다. 이들은 느리지만 확실하고 침착하고 차분하게 자신의 영역을 고수하고 있기에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