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변화에 덤덤한 아이
(아네테 멜레세, 미래i아이, 2021)
주인공 ‘올가’는 잡지와 신문, 과자 등을 파는 아주 작은 가판대인 ‘키오스크’ 안에서 생활합니다. 키오스크는 올가의 인생 자체였어요. 친절한 올가는 단골손님들이 무엇을 사려고 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챙겨주죠. 늘 반복되는 같은 일상입니다. 그 안에서 매일 이른 시간부터 밤까지 일하며 기진맥진해요. 여행을 가고 싶으면 여행 잡지를 보면서 만족해요. 잡지 속 멋진 석양을 보면서 편안한 표정으로 자신만의 꿈을 꿉니다. 그리고 기분 좋게 잠이 들죠.
9번 유형의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게 있어도 표현하지 않아요. 그저 맛있는 쿠키 하나에 쉽게 만족하죠. 그림책 속 키오스크는 작고 답답한 공간인데 그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올가는 전혀 움직이지 않아요. 키오스크를 벗어나고 싶으면 문을 열고 나가는 대신 석양이 황홀한 바다 사진을 벽에 붙여두고 만족하죠. 그러나 그림책을 자세히 보면 올가의 소파 뒤 변기 위에 두통약이 나와 있어요. 이 알약을 통해 평화롭고 만족스러워 보이는 겉보기와 달리 혼탁한 백일몽 속에서 시간이 멈춘 무감각한 9번 유형의 내면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우유부단함이 있기 때문에 삶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많이 노력이 필요하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행동하는 대신 무거움과 졸림을 느끼며 게으름으로 빠져들어 가요. 한번 게으름에 빠기지 시작하면, 쉽게 피로를 느껴서 낮잠을 자주 자려고 하고 수면시간이 길어집니다. 급기야 우울해져서 머리가 멍하다고 하소연하는 아이들입니다.
이 유형의 아이들은 겉으로 평화스러워 보이고, 아이 스스로도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실은 주변의 갈등이나 불편한 사건들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 실제의 세상으로부터 도망쳐버립니다. 가족의 갈등 속에서 ‘사라져 버려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하죠. 9번 유형의 아이들은 자신의 욕구를 주장하고, 화를 내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자신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라고 느끼며 자랍니다. 이런 생각으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강하게 표현하는 법이 없죠. 이들의 마음은 주변 사람들의 문제와 요구로 꽉 차이 있고 그것들을 충족시켜 주려고 노력하느라,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됩니다.
그림책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어느 날 아침, 평소보다 멀리 놓인 신문 뭉치를 들여놓으려고 애쓰고 있을 때 남자애들이 과자를 훔치려고 했어요. 그때 올가가 외칩니다. “안 돼!” 그 순간 키오스크가 넘어지죠. 올가의 세상이 뒤집혔어요. 올가는 겨우 일어나 흩어진 물건들을 주우려고 애썼죠.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런 세상에나, 올가에게 키오스크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었네요.
그냥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도 있을 텐데, 올가는 잠시 산책을 떠나요. 그러다가 평소 단골손님의 강아지 ‘람보’가 반갑다고 빙글빙글 도는 바람에, 람보의 목줄에 발이 칭칭 감겨서 강물로 떨어집니다. 그렇게 올가는 키오스크 속에 갇힌 채 바다로 떠내려가요. 올가는 사흘 밤낮을 떠다니다가 큰 파도를 만나 바닷가로 밀려왔어요. 무서울 법도 한데 올가의 표정은 평온해 보입니다.
9번 유형의 아이들은 다른 사람이나 세상과 관계를 맺는 데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아요. 편안한 내면 상태를 꼭 붙들고 그 상상 안에서 살아가죠. 그 결과 세상은 안전합니다. 이들은 지진이 나거나 홍수가 나도 그 속에서 불안해하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하는 아이들입니다. 마치 큰 파도를 만나도 키오스크 안에서 평화로운 올가처럼요.
5번 유형은 상상 속의 성 안에서 살아갑니다. 영화 <가위손>의 성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나 혼자 조용하게 살아가는 성이죠. 그런데 성 안에 아무것도 없어요. 이들이 성안에서 느끼는 감정은 결핍입니다. 그래서 5번 유형은 대체로 인색합니다. 나에게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느끼죠. 그래서 누군가에게 나눠주어야 하는 게 불편합니다. 내가 나눠 줄 수 없기에 받는 것도 싫어요. 안 주고 안 받고 싶은 게 이들의 생각입니다.
9번 유형은 상상 속의 왕궁 안에서 살아갑니다. 성 안에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충족되어 있지요. 저 작은 공간인 키오스크 안에 참 많은 것들이 구비되어 있듯이 말입니다. 9번 유형이 상상하는 내면의 은신처는 안전한 천국입니다. 그 공간 안에 있으면 평온하고 만족스럽지요. 그러나 5번 유형과 9번 유형 모두 그 공간 안으로 타인을 초대하지 않습니다. 두 유형 모두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양육 과제입니다.
다시 그림책 속, 올가는 자신이 꿈꾸던 석양이 아름다운 바닷가에 도착했어요. 그러나 여전히 키오스크 안에 있죠. 이제 그 안에서 아이스크림을 팔아요. 어느 날 등에 호랑이 문신을 한 남자가 파라솔을 가져와 올가의 키오스크 앞을 가립니다. 놀라고 화가 난 표정의 엘가는 화를 내지 않고 그저 옆으로 조금 키오스크를 옮깁니다. 한 소년이 아이스크림을 땅에 떨어뜨리자 더 많은 아이스크림을 새로 줍니다.
9번 유형의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기분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욕망에 때문에 항상 뒤로 물러나 있어요.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피해버림으로써 싸우지 않고 넘어가죠. 이런 방식은 항상 자신이 뒤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다른 사람에게 불편함을 만들어 내지 않는 겸손한 태도로 보입니다. 스스로를 제한하는 공간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죠. 이들은 희망과 기대를 최소화함으로써 누군가에게 거부당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는 상황 속으로 숨어들어갑니다.
그림책 마지막 장면, 올가는 여전히 키오스크 안에 있어요. 다만 이제 과자 대신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여행 잡지 속 석양이 아니라 진짜 황홀한 석양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릎에는 이제 산으로 가는 여행 잡지가 있네요.
9번 유형의 아이들은 자신이 특별한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삶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죠. 키오스크에서 벗어나도 될 텐데, 그저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며 만족하죠.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힘들 수도 있지만, 거기에서 긍정적으로 자기의 평화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삶의 생동감과 활력을 희생시켜서 얻은 대가이지요. 진정한 평화는 활력과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그림책을 보면서 9번 유형에게 말해 주고 싶었어요. 작고 좁은 ‘키오스크’ 그 작은 세계에서 나와서 큰 세계로, 멋진 산으로 출발하세요. 행동하다 보면 점점 9번 유형의 본질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만족한다고, 지금 평화스럽다고 생각하죠? 정말 그럴까요? 정말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 정말 원하는 것 그것을 지금 바로 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