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은 늘 설렌다.
회사에 입사했을 때, 회사를 그만두고 번역 공부를 시작했을 때, 첫 역서가 나왔을 때,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을 때 나는 여러 번 설레었다.
모든 설렘 위에 포개지는 일상이라는 이름의 무덤덤함은 나에게도 찾아왔고 어느새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지만 해야 하는 일도 많은 두 아이의 엄마로 피곤한 일상을 건너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내려놓을 수 없었다. 대단한 일을 하려는 건 아니었지만 나의 일은 내가 쌓아 올린 내 세계에서만큼은 대단한 일이었다. 나의 우주를 지키고 싶었다. 잠시라도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는 현실이 높고 두꺼운 벽처럼 내 앞에 놓여 있었지만 그 벽이 높아질수록 나에게는 오기 같은 게 생겼다. 그 벽을 넘으려 하기보다는 등지는 편을 택했던 것 같다. 어차피 부술 수 없는 현실이었기에 나를 소진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법을 안다면 그리고 평화롭게 사는 법을 안다면 이미 덕이 완성된 것이다. 그냥 그대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이 좋은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정희재, 장자의 말
하고 싶은 일이 많았기에 우선순위를 정리해야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택한 내 직업을 늘 가장 우선으로 두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 몇 년 힘겨운 시기를 보낸 끝에 출판번역가라는 직업에 어느 정도 안착할 무렵, 나는 조금 우쭐해졌었는데 이제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했다.
출판번역가는 많지만 믿고 맡길 만한 번역가는 적다는 얘기를 듣고 그럼 그런 번역가가 되면 되겠다, 라며 자부심이 넘쳤던 나는 그런 번역가가 되어 있지 못했다. 우선순위의 두 번째에 공부를 놓은 건 그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든 잘하게 되면 더욱 즐기게 되고 좋아지는 법이었다. 공부를 계속하자 예전처럼 마구 휘청이지는 않게 되었다.
그다음은 읽고 쓰기였다. 하루에 정해진 분량을 진행하는 일이나 공부와는 달리 유연함을 허락했다. 글이 써지지 않는 날은 머리를 비웠고 그러면 신기하게도 다음 날이나 다다음날 생각지도 못한 문장들이 나왔다. 창의적인 글쓰기는 명료한 문장으로 번역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나의 세가지 우선순위는 마치 3각 의자의 다리처럼 서로를 지지하고 있었다.
그 이외의 욕심은 내려놓기로 했다. 수첩에는 아직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한가득 적혀 있었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언젠가, 라는 나와의 약속으로 잊지 말자는 다짐으로 대신했다.
현실적으로 나의 하루는 이 세 가지 우선순위에 놓인 일조차 다 수행하지 못한 채 어영부영 마무리 될 때가 더 많다. 집에서 일하는 엄마에게는 육아와 내 일 간의 경계가 희미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잘 노는 틈을 타 5분, 10분, 길면 30분 조각 시간 동안 내 일을 하지만 고개만 돌려도 육아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안아 달라고 떼쓰고 놀아달라고 떼쓰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있어서는 우선순위가 무의미하다. 내 일과 육아의 관계는 수직이 아니라 수평이므로. 아이가 갑자기 아프거나 나의 관심이 필요한 순간 앞에서 내가 세운 계획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으므로.
그럼에도 나는 우직하게 가보려 한다. 내가 지키고픈 나의 세계가 무너지면 엄마로서의 나의 세계, 아내로서의 나의 세계도 무너질 것이란 걸 알기에.
다만 무리하지는 않는다. 나에게는 아이들을 재우고난 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노트북을 다시 켠다거나 아이보다 일찍 일어나 무언가를 기록할 에너지는 없다. 나의 한계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깨어 있는 시간을 잘 쓰기로 한다.
남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때에는 주저하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욕심낸다. 방문만 닫으면 혹은 이어폰만 꽂으면 순식간에 나의 세계로 넘어온다. 그렇게 잠시 보살핌을 받은 나는 다시 저 세계로 건너갈 힘을 얻는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는 건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