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사는 일이 쉽지 않은 세상이다.
어떤 이는 나에 대해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 읽어야 할 책은 많다. 고전이다 뭐다 하는 책들을 소화하기가 무섭게 새롭게 쏟아지는 신간이 이목을 잡아챈다.
그뿐이랴. 온갖 정보를 쏟아내는 팟캐스트나 유튜브 따위로 향하는 관심도 방치할 수 없다. 영화도 봐야 하지, 직접 체험도 해야 하지....
우리는 그렇게 해서 나에 대해 얼마나 알게 될까? 넘쳐나는 콘텐츠 속을 헤엄치다 보면 나에 대해 알게 되기는커녕 혼란만 가중된다. 남들이 마구잡이로 던져 놓은 정보를 향해, 그쪽이 내가 가고 싶은 길인 줄 잠시 착각하고 쫄래쫄래 따라가 보기도 하지만, 그렇게 내 몫의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 쳐보지만, 왠지 제자리를 맴도는 것만 같은 날이 많다.
무사히 삼십 대에 접어들고 보니 알겠다. 나는 경험을 하던 중이었고, 삶이란 생각보다 길다는 것을. 인디밴드 옥상달빛의 노래 가사처럼 '어디로 가는지 여기가 맞는지 어차피 우리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낸 세월이 쌓일 때 뭐라도 알게 되는 것이리라.
《오늘의 좋음을 내일로 미루지 않겠습니다》, 오지혜
그럴까? '충분히 살아내지 못한 것 같은' 오늘을 더러워진 빨랫감처럼 세탁기에 마구 욱여넣는 것 같은 기분일지라도 이런 세월이 쌓이면 뭐라도 알게 되는 걸까.
그런 세월이 쌓이고 쌓여 어쨌든 번역가라는 타이틀 옆에 나를 세울 수 있게 되었으니 그걸로 된 걸까.
살다 보면 눈을 반투명 안대로 가린 채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순간 같을 때가 있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난 그런 기분이었다. 내가 모르는 세계, 나만 어리숙한 세계에 이런 자세로 서 있는 게 맞는지 몰라 당황한 적이 많았다. 나로 살기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 두 개의 자아를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허물을 벗은 지 10년이 되어가는데도 나로 사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래도 어찌어찌 서른 권 가량의 책을 번역하고 경력도 쌓였으니 그 정도면 잘 살고 있다 할 수 있겠지만 번역가로서 나의 실수익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부모님께 효도다운 효도도 못하는 지금의 상황이 나를 나로 살기 어렵게 만든다.
다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 커다란 사실 하나에 위안을 받는다.
어쩌면 나로 사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게 아닐지도 모른다.
결국 마음 아닐까. 내가 나로 살기 위해 필요한 건. 무언가를 통해 심어보려 하는 억지스러운 마음이 아닌 내 안에서 움트듯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마음.
아무리 많은 책을 봐도, 아무리 많은 영상을 뒤져도 나를 그 마음에 데려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마음은 설거지를 하거나 아이와 장난을 치며 노는 순간 문득 찾아올지도 모른다.
울적한 날이든 화창한 날이든 내 안에는 어떠한 마음이 솟아난다. 그 마음을 주워 담으며 나로 사는 일에 조금은 편안해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