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삶에서 무언가를 욕망한다면

by 물고기자리

밤은 이상한 시간이다.


아침에 머리 끝까지 차올랐던 에너지가 어느새 발끝에서만 찰랑대는 이 맘 때쯤 되면 하찮은 문장, 별 거 아닌 말에도 마음이 철커덕, 흔들흔들, 그렇게 허우적거리고 만다.


어제는 다른 번역가들이 쓴 글이나 책들을 보다가 그들의 공부 양에 기가 죽고 그들이 갖춘 장비에 초라해지고 말았다.


노트북을 들고 아이들을 따라 전전해야 하는 내 신세에 데스크톱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하물며 그들의 공부량을 따라간다는 게 가당키나 할까. 죽어다 깨어나도 불가능한 일들 앞에 쉬이 무너지고 마는 밤이다.




무언가를 향한 욕망이 순수한 기쁨을 넘어서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순간, 나는 욕망과 현실 간의 싸움에 붙들린 어이없는 인질마냥 꼬락서니가 형편없어지고 만다.


"책은 자신의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진 것이야말로 오히려 매력적이다(《고독한 직업》 중에서)."라는 말에 이끌려 그동안 관심을 가져 보지 않은 새로운 세계를 탐닉하고자 하는 욕심까지 얹고 나면 어느새 내 욕망은 쇠똥구리가 굴려 놓은 똥처럼 부풀대로 부풀어 있다.


실타래 풀려버린 욕망의 연들을 다시 지상으로 끌고 오는 일은 녹록지 않다.


두 아이의 몫까지 더해 삼인 분의 삶을 사는 듯한 요즘, 나는 자주 덜커덕거리고 헉헉대는데, 욕망이 커져가는 것에 반비례해 체력은 급감하고 있는 탓일 테다.


이제야 내가 원하는 게 무언지 대충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몸이 따라가질 못한다. 이렇게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시간들 앞에서 멍청한 몸을 껴안고 나는 꺼이꺼이 울고만 있다.


삶은 이상한 것이다. 내가 원할 때 곧장 멈출 수 없다. 계속하고 싶을 때 계속할 수 없는 것처럼.

《디스옥타비아》 , 유진목


삶을 중단한 수 있다면 예전의 한 코미디 프로그램처럼 "잠시만 쉬고 갈게요."하고 스톱을 외칠 수 있을 텐데. 그리고 내가 쉬었다는 걸 아무도 모르게 다시 play 버튼을 누를 수 있을 텐데.


허나 삶은 그런 게 아닐 거다. 삶은 내가 주춤하는 순간에도, 뒷걸음질 치는 순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란 듯이 흘러간다.


우리가 이 삶에서 무언가를 욕망한다면 바로 삶의 그런 제삼자 같은 모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라는 존재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지나가는 무심한 모습이 나의 욕망을 자극하는지도.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문에 나는 또 삶에 기대고 만다. 나의 모든 장면은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그게 비단 나의 일만은 아니라는 게, 삶의 시크한 태도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내려앉는다는 게 위안이 된다.


이렇게 조금씩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조금은 쉬어가도 괜찮아, 따위의 말들이 건넬 수 없는 위로를 나는 거대한 삶 속에서 본다.


생의 가혹함 앞에 우리는 똑같다. 어떠한 태도로 살지 각기 다른 선택만 있을 뿐.


오늘도 그 답을 찾느라 이상한 밤 속을 헤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