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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Jun 03. 2020

불완전하고 위태로워서 자유로웠던 1년의 기억

모지락스럽다.


《작은 것들의 신》으로 공부를 하는 중 모르는 단어를 만났다. 처음 보는 단어였다. 사전을 찾아보니 "보기에 억세고 모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길고양이가 처한 환경이 험하고 모지락스럽다" "세상이 시끄럽고 모지락스럽다." 등으로 쓰일 수 있다고.


원문의 단어는 unceremonious였다.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나에게는 원 없이 공부할 수 있던 1년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처럼 정해진 공부가 아니라 어른으로서의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기간.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 입시 공부를 하던 때였다.


그때조차도 '입시'라는 단어가 앞에 붙는 바람에 약간은 제약적인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지만, 불안정한 미래를 담보로 한 시간이었기에 마냥 자유롭지는 못했지만 어린 시절의 공부와는 달리 내가 주체적으로 계획을 세울 수 있었고 회사를 그만두었던 터라 하루 종일 마음껏 공부할 수 있었다.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되었던, 지금과는 달리 진짜 홀가분한 시절이었다.  


나는 궁극적으로는 번역을 하고 싶었음에도 통역 공부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는데 번역 대학원의 번역학과는 정원이 적기 때문에 통역과 시험도 일단 봐야 한다는 조언 때문이었다. 영어 지문을 듣고 바로 요약해서 말하는 연습, 한국어 지문을 영어로 통역하는 연습 따위를 하며 내 목소리를 녹음해서 듣곤 했는데 녹음된 목소리의 나는 전혀 나 같지 않았고 나의 구린 발음을 계속해서 듣는 건 고역이었다.


약간 우습기조차 한 그때 그 시간조차도 지금 돌아보면 다 품어주고 싶을 만큼 애틋하다. 그때가 아니었으면 그런 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을까, 그런 세계도 있다는 걸 들여다볼 수조차 있었을까. 입시 학원은 그동안 내가 갇혀있던 우물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그 또한 또 하나의 우물이었겠지만 그렇게 새로운 세상을 알아간다는 건 나에게 신선한 자극이었다.


회사에서 해방되었다는 들뜬 마음에 성실성이 어우러져 그럭저럭 1년 동안 그 생활을 이어갔지만, 어찌어찌 운이 좋아 원하던 학교의 합격 통지서를 손에 쥐게 되었지만 만약 그 생활이 1년이 아니라 더 길어졌다면 마냥 신선함 속에 머물지는 못했을지도 모른다.


대학원 입학을 포기하고 바로 아카데미에 등록했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출판번역가로서의 길을 차근히 닦았을지도 모른다.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일에 더 치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그때 내 손을 들어주었고 나는 그렇게 돌고 돌아 기술번역도 해가며 출판번역가로 자리를 잡았다. 나에게 하나의 선택지를 더 준 셈이었다.


출판번역가로 국한시킨다면 이 먼길을 돌아온 과정이 시간 낭비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어떠한 공부도 나에게 독이 된 것은 없었다. 그 과정을 거치고 거쳐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뾰족하게 다듬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 때의 나로 돌아간다 한들 내 선택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지금의 나에게 그런 1년이 주어진다면 전혀 다른 방법으로 공부를 하겠지만.


그래도 나에게 그런 시간이 있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큰 위로가 된다. 늘 바삐 살았던 나에게도 무언가에 매여 있지 않아 불안하고 위태위태했던 하지만 그래서 진정 자유로웠던 시간이 있었다는 게. 외딴섬처럼 내 인생의 한 지점에 놓여 있는, 언제든 꺼내보고 그리워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있다는 게.


내 앞에 완강히 버티고 있는 현실 앞에 지금의 나는 공부조차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지만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지금은 조금씩 쌓이는 시간에 만족하고 있다.


너무 적은 양이라며 투덜거리는 이 시간조차 나중에는 그리워하게 될지 모르므로. 하루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일지언정 책장을 열고 공부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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