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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Apr 03. 2020

진짜 번역가 되는 법

번역가 이야기

이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몸이 조금 피곤하나 아프거나 할 때에도 그저 습관처럼 번역을 하는 게 당연한 일상처럼 느껴진다. 번역가 되는 법을 찾아 헤매던 날들을 생각하면 먼 길을 왔다 싶다.


많은 이들이 애타게 찾는 ‘번역가 되는 법’은 정확히 말하면 번역가 입문 방법일 것이다. 통번역 대학원에 들어가야 하나, 자격증을 따야 하나, 아카데미에 등록해야 하나 등등 정해진 경로가 명확하지도, 한 가지로 귀결되지도 않는 이 세계에서 대다수의 번역가 지망생이 번역가 입문 방법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진정한 번역가 되는 법은 그런 표면적인 의미가 아닐 것이다. 아카데미나 대학원을 졸업해 에이전시나 출판사를 통해 일을 받는다, 라는 방법론인 ‘번역가 되기’ 말고 번역가로서의 자질을 따져보고, 어떠한 자세로 번역할 것인가, 어떠한 번역가가 될 것인가, 따위의 고차원적인 고민을 해보는 것, 이것이 진정한 번역가에게 요구되는 자세일 거다.




존 버거는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에서 이렇게 말했다.


번역가는 원 텍스트를 읽고 또 읽으며 그것을 뚫고 나가, 그 텍스트를 낳은 비전이나 경험에 가 닿으려 애쓴다. 그런 다음엔 거기서 찾은 것을 모으고, 거의 말없이 떨리는 이 ‘무엇’을 가지고 와 번역의 결과가 되는 언어 뒤에 놓는다...... 말해진 언어는 하나의 몸이며, 살아 있는 피조물이다.    


이 글을 읽고 또 읽어보며 단순히 에이전시냐 출판사냐의 1차원적인 문제를 떠나 보다 고차원적인 고민을 하는 번역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매당 몇 백 원 더 받으려고 아등바등 협상하는 대신 이 단어와 저 단어 사이에서, 이 문장과 저 문장 사이에서 몇 시간이고 고민하는 그런 번역가가 되고프다.


물론 당장 의뢰받은 번역을 납기일에 맞춰 보내기 급급하고, 또 다른 책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눈을 번뜩이고 다녀야 하는 현실은 예술가로서의 삶을 거부하지만 그럼에도, 더 나은 번역가가 되기 위한 일말의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러면서 신세 한탄만 하고 있는다면 그 결과는 고스란히 나의 몫으로 남을 뿐일 거다.


아이를 낳고 나서야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왜 아이들을 낳기 전에, 시간이 많았을 때 더 열심히 살지 못했나, 후회한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그때도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었으나 늘 불안해했던 것 같다. 하지만 계속해서 공부하고 성장하면서 불안감이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다. 당장 기회가 오지 않더라도 내가 계속 성장하고 있는 한,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   


관련어를 전공하고 번역가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말끔한 번역에 감탄하며 역자의 이력을 들춰봤을 때, 백이면 백 영문과 출신인 것을 보면 그런 사람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부족한 내 내공에 다소 기가 죽는 날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 더디지만 계속해서 실력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각자 다른 속도로 올라가는 것뿐이다. 언젠가 무너질 성벽을 쌓느니 차근차근 단단한 성을 쌓아볼 요량이다. 그리고 그렇게 공부하고 있는 동안에는 적어도 불안하지 않다.    

     



1인 출판을 하는 김동희는 《혼자서, 좋아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평범하다. 그러나 그 일을 매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10년 후, 20년 후에도 책을 만들고 있다면 결과적으로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특별한 일을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평범함을 지속 가능하게 지키면 된다.

     

오래 하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이 세계. 나는 오래 할 각오가 되어 있으니 그때 다시 얘기해 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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