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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Jun 16. 2020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하려는 이들에게

번역가가 되고 싶은 그대에게

내 블로그에는 요새도 종종 진로 상담글이 달리는데, 그중에는 통번역대학원 진학 관련 글도 많다.


그 글들을 보며 지금의 나라면 이렇게 공부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한 번 정리해 봤다(통역과는 해당 안 됩니다). 더불어 그때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너 지금 잘하고 있어" 같은 따뜻한 말 한마디도 보탠다.


통번역대학원 번역학과는 한영과 영한 번역 시험을 본다. 전반적인 영어 실력을 향상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둘 다 같은 맥락에서 접근해야 하겠지만 우선은 입시 시험이라는 틀 내에서 영한, 한영을 구분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선 영한의 경우 원서 읽기가 가장 기본이다. 나 역시 입시 설명회에 가보면 원서를 많이 읽었다는 합격자의 얘기를 많이 들었으면서 정작 원서 읽기에는 소홀했다. 원서를 읽는 데에는 시간이 어느 정도 소요되기에 당시의 내 영어 수준으로는 부담이 많이 되었던 것 같은데, 그럴수록 더 읽었어야 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쇼퍼홀릭> 같은 칙릿 소설로 처음 원서를 접했는데 무엇이 되었든 자신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관심분야에서 시작해 차츰 난이도를 높여 가기 바란다.


그다음은 글쓰기 연습이다. 영한은 최종적으로 한글로 표현해야 하므로 매끄러운 번역문은 결국 나의 매끄러운 글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게다가 대학원 별로 입시 전형이 다르지만 해당 지문을 번역한 뒤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기를 원하는 곳도 있다. 평소 다양한 주제에 대해 생각하며 글로 써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글은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라도 블로그를 시작해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차곡차곡 써나가 보기 바란다.


나도 안다. 아무도 안 보는 글을 쓴다는 게 얼마나 고역인지. 얼마나 동기부여가 안 되는지. 그래도 꾸준히 쓰다 보면 분명 글이 는다. 그것만큼은 장담할 수 있다. 그리고 글쓰기 실력만큼 번역에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없다. 어차피 지원자들의 영어 실력은 고만고만하다. 그렇다면 글쓰기로 차별화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다. 영어에만 매달리지 말고 제발 글쓰기에도 시간을 투자하기 바란다.


글쓰기 연습과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 한국어로 된 책 읽기다. 잘 쓴 글을 보며 나의 글과는 어떻게 다른지 혹은 내 글이 논리가 맞지 않고 밋밋하다면 왜 그런지 생각해보는 과정 속에 나의 글쓰기는 한층 성장한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공부도 자연스럽게 되니 소설, 경제 경영, 역사, 과학, 예술 등 분야를 가리지 말고 틈틈이 읽기 바란다.


한영의 경우 내가 쓸 수 있는 영어 표현을 최대한 많이 암기해야 한다. 내가 학원을 다닐 때에는 제발 자기 마음대로 지어내려 하지 말고 원어민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다 쓰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곤 했는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학원을 적극 활용해야 하는 이유다. 나 혼자서 그 많은 표현을 다 주워 담으려면 아무래도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뉴욕타임스 같은 신문을 활용해 시사상식을 쌓을 겸 표현을 익히는 것도 방법이다.    


문법이 자꾸 깨진다면 문법을 한 번 쭉 점점해 보는 것도 좋다. 내가 약한 부분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다음에는 자꾸 번역해보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많은 표현을 알더라도 문장을 연결해 쓸 때면 머리 따로 손 따로 놀 수도 있다. 시간을 정해 놓고 연습하며 철자 실수도 없는지 점검한다.  


이것 외에도 요새는 혼자서 공부할 수 있는 앱을 비롯해 좋은 퀄리티의 기사들이 넘쳐난다. 도처에 널린 공짜 교재들만으로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다. 하지만 입시 시험이 괜히 있는 게 아니고 입시 학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혼자서 공부하는 사람이 절대로 알 수 없는 팁 따위를 학원은 쏙쏙 제공해준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학원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단, 나에게 맞는 수업인지 파악하기 위해 반드시 청강을 해보기 바란다. 수업을 들을 때에는 고상한 척 우아한 척할 필요 없다. 모르는 게 있으면 강사를 붙들고 늘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알아내는 고집이 필요하다. 비싼 돈 내고 정물처럼 앉아만 있다가 오면 나만 손해 볼뿐이다.


스터디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나는 굳이 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혼자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억지로 스터디를 하려고 하면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없다. 학원에서는 스터디를 권장하는 분위기인데 나에게 맞지 않다면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나 역시 스터디는 거의 하지 않았다.


해외에서 태어나거나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 유학하고 온 사람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나는 그렇지 않다며 상대적으로 주눅이 든다면, 부디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통역은 모르겠지만 번역의 경우 원어민이라고 더 유리한 건 아니다. 나 역시 순수 국내파였고 유학은커녕 미국 땅 한 번 밟아본 적 없는 상태였다. 물론 그래서 좀 더 돌아간 면이 있을 수 있었겠지만 결국 번역가로 자리잡지 않았는가. 이 바닥은 길게 봐야 한다. 단기적인 시야로 접근했다면 이제 그런 생각은 거두길 바란다.


입시 공부에 치우치다 보면 나무만 보고 숲은 못 보는 경우가 많이 생기고 지금처럼 더운 여름이면 집중도 잘 안 될 수 있다. 학원에는 정말 공부의 열기가 너무 강해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기도 한다. 그럴 때면 하루 정도는 학원을 째고 종일 좋아하는 미드만 봐도 좋다. 그 하루가 대세에 큰 지장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며 그때 본 미드가 나의 영어 실력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인생은 모르는 거다.  




돌아보면 그때 나의 실력이 다른 입시생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러 권의 책을 번역해본 친구들도 입학했기에 결국 운도 어느 정도 작용한 셈이지만 학교 측에서 지원자의 성장 가능성을 본 게 아닐까 싶다. 그 말인 즉 기본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아무리 뛰어난 표현을 잘 쓰더라도 기본적인 문법이 맞지 않으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반면 짧은 글 안에서도 논리가 명확한 글, 깔끔하게 다듬어진 글은 누구에게나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법이다.


출판번역가가 되려면 굳이 통번역대학원을 나와야 할 필요는 없지만 본인의 전반적인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서든, 학력 취득을 위해서든, 더 넓은 선택지를 위해서든 통번역대학원에 들어가겠다고 결정을 내린 사람이라면 기꺼이 박수 쳐주고 싶다.


통번역대학원 졸업생의 대우가 예전 같지 않다고, 그렇게 고생해서 들어갔지만 막상 졸업 후 또다시 불확실한 미래 속에 내던져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어떤 직업인들 안 그럴까 싶다.


졸업 후 각자의 진로는 결국 자신이 얼마나 꾸준히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로또를 바라고 이 바닥에 들어온 게 아니라면 이 사실을 명심한 채 지금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미래를 위해 기꺼이 공부라는 길을 택한 당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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