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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Jun 25. 2020

꾸준히 읽고 쓰고 또 고쳐 쓸 것

《번역은 반역인가》를 쓴 인문학자 박상익의 《번역청을 설립하라》를 읽다가 번역가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저자가 남긴 말 중 공유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 몇 자 먹어본다.




4. 쓰고 또 쓰고, 고쳐 쓰고 또 고쳐 쓰는, 이마에 땀 흘리는 수고를 마다하면 안 된다. 번역에는 왕도가 없다. 궁극적으로 정성이며 성의다. (중략) 일단 번역한 문장은 읽고 또 읽으면서 문장의 흐름이 제대로 이어지는지, 접속사는 적절히 사용되었는지 부단히 검토하라. 문장의 리듬을 살리기 위해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소리 내어 읽는 건 내가 지금도 자주 쓰는 방법이다. 문장이 뭔가 부드럽지 않은 느낌이 들면 무조건 소리 내어 읽어본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고쳐 쓴 뒤에는 다시 시간을 두고 또 고쳐 쓴다. 고쳐 쓰면 쓸수록 번역문이 좋아지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더 고쳐 쓰고 싶어도 번역료가 너무 낮을 때에는 간혹 주저하게 된다. 내 이름을 걸고 나오는 거니 내 이름에 먹칠하지 않도록 더 봐야지 싶다가도 뭔가 너무 비생산적인 나의 모습에 자괴감이 들고 의뢰한 쪽이 괘씸한 마음도 들고 그러는 것이다. 아, 한낯 미물인 걸 어쩌겠는가. 그래서 이제는 너무 낮은 번역료에는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선을 그었다. 내 정신건강도 지키고 작품의 퀄리티도 유지하려면 그 방법뿐인 것 같다.


5. 번역가는 기본적으로 독서인이어야 한다. 자신만의 개인 도서관을 만들어 관심 분야에 대한 책을 꾸준히 사 모으고 책 읽기를 삶의 가장 소중한 부분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이란 가장 근원적으로 보자면 결국 글 읽기와 글쓰기다. 읽기(input) 없이는 쓰기(output)가 나올 수 없다. (중략) 좋아하는 것으로는 2퍼센트 부족하다. 책 읽기를 즐겨라.


직업을 핑계로 책을 꾸준히 사 모을 수 있고 마음껏 읽을 수도 있으니 번역가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직업인 셈이다. 개인 도서관은 모든 번역가의 꿈일 텐데, 나도 자꾸만 책을 늘리고 싶은 욕심에 허우적거린다. 나중에 번역할 때 도움이 될 거야, 라며 당장 읽지도 않을 교양서를 마구 사들이고 싶은 마음.


번역을 하다 보면 인용문이 많이 나오는데, 역서가 있을 경우 기존 역서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어야 한다. 그래서 가끔은 책이 많으면 그중 하나라도 걸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책을 쌓아둘까도 싶지만 사실 내 서재에 꽂힌 책이 내가 번역하고 있는 책에 등장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며 그건 왠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한국에 있을 때는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그 부분만 적어 오기도 했는데 여기서는 온전히 온라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밀리의 서재>와  <리디 셀렉트>를 월 정액제로 이용하거나 전자책으로 나온 경우는 전자책을 구매한다. 다른 번역가들은 어떻게 하나 가끔 궁금한데 뭐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번역하는 책에는 소설의 인용문이 수없이 등장하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역서가 하나 같이 없다. 불행이라면 내가 일일이 번역을 해야 한다는 것, 다행이라면 역서를 전부 사들여야 하나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6. 낭중지추란 말이 있다. 능력과 재능이 있는 자는 언젠가는 인정받을 날이 오고야 만다.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이거였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안 알아줄지라도 매일 계속해서 번역하다 보면 언젠가는 조금은 인정받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


"직접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의 인정이 나를 키울 거라는 말"을 새겨본다. 혼자 일하는 사람들은 느슨한 네트워킹을 유지할 필요가 있음을 최근 들어서야 이해한다.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 보일지라도 언제 어디에서 나를 키워줄 사람이 등장할지 모르는 일이다.


결론은 꾸준히 읽고 쓰고 고쳐쓸 것.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신나는 일이라는 사실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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