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여덟 페이지에서 열 페이지를 번역한다.
하루치 정해진 분량을 꼬박꼬박 채워나가면서 하루의 뼈대를 세운다. 그건 지겨운 일이 아니라 나를 살게 하는 일이다. 하루의 루틴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내가 반복적으로 행하는 일이 나를 규정할 것이다.
여덟 페이지의 하루가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책 한 권을 번역하게 된다. 두꺼운 책이라고 겁낼 건 없다. 늘 그렇듯 정해진 분량을 묵묵히 번역하다 보면 결국 마지막 장에 도달하게 되어 있으니까.
여덟 페이지를 번역하면 한글 파일로는 2-3장 정도가 나오는데 그러면 나는 파일의 문서정보에 들어가 원고지 매수를 확인한 뒤 계약한 번역료에 맞춰 셈을 해본다. 하루치 나의 노동을 값으로 환산하는 이 같은 의식은 회사를 그만두고 혼자 하는 일을 시작한 이후 내가 종종 치르는 의식이다.
누군가에게는 우스워보일지도 모르는 이 의식은 나를 지탱해준다. 아이를 돌보는 것 외에도 나만의 일을 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내 앞의 정직한 증거가 나를 살아가게 한다.
한 권의 책을 번역하는 일은 책임감이 필요한 일이다.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도망치는 사람처럼 책을 덥석 받고 도저히 못하겠다며 그 책임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도망가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나에게는 책의 막막한 길이감이 주는 안정 같은 게 있다. 겨우 내 먹을 도토리를 쟁여 놓은 다람쥐의 마음이랄까. 하나의 책을 품고 있는 동안은 얼마를 벌든 든든하다.
번역할 책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돌아보면 늘 그랬다. 어떠한 책이든 감사한 마음이 시작이다. 그 책을 쓴 저자에게 감사하고 그 책을 나에게 의뢰해준 상대에게 감사하고 나에게 따라온 운에 감사한다. 어려운 책이든 쉬운 책이든 재미있는 책이든 살짝 지루한 책이든 매 번 똑같다.
새로운 책을 의뢰받을 때면 언제나 설레고 마는데, 그건 이 책과 함께할 앞으로의 시간이 기대되기 때문일 거다. 누군가의 지시를 받지도, 쓸데없는 회의에 낭비하는 시간도 없는 이 고요한 작업이 좋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건 내 머릿속뿐이다. 글을 써보기 전까지는 어떠한 문장이 나올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듯 번역을 해보기 전까지는 내가 어떠한 문장을 써 내려갈지 알 수 없다. 머릿속으로 대충 해석을 해 놓더라도 막상 말이 되게 문장을 적어 내려가는 일에는 품이 든다. 그 품이 드는 일이 나는 좋다.
책을 처음 번역해본 게 대학원에 다니던 2011년이었으니 내년이면 10년 째다. 10년은 내가 직장생활을 했던 5년의 두 배다. 평범하지 않은 직장인으로 지낸 시간보다 평범한 번역가로 지낸 시간이 곱절은 길어진 것이다. 그 10년을 누군가는 더욱 잘 썼을지도 그리하여 더욱 유명한 번역가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10년 전으로 돌아가도 나는 나로 살았을 게 뻔하다.
누군가에게는 나의 일이 더 중요하고 누군가에게는 아이를 잘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면 나는 둘 다 잘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둘 중 하나를 내려놓지는 않는 균형 잡힌 삶을 추구하고 싶다. 조금 못난 부분이 있어도 나중에 그것 때문에 이걸 희생했다는 변명은 하지 않도록 아무리 가늘지언정 내 일을 잡고 있는 끈을 놓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여덟 페이지밖에 못한다고 투정 부리지 않는다. 내 일을 더 하고 싶은 욕심을 가만히 내려놓는다. 내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내어주면 아이에게 내어줄 에너지가 부족해지기에 나에게 주어진 한계를 알고 일의 우선순위를 정렬하며 엄마로서의 나의 위치를 잊지 않는다.
책을 번역하다 보면 1년을 몇 권의 책으로 나눠서 생각하게 된다. 12달을 계절의 흐름으로 기억하기보다는 한 권의 책을 마감할 때, 혹은 또 다른 책을 시작할 때로 기억하는 것이다. 허나 인생은 마감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므로 책 속에 잠식되지 않도록 때로는 의식적으로 거리를 둬야 한다. 보다 큰 동그라미를 그리기 위해 일과 멀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내일도 여덟 페이지를, 혹은 열 페이지를 번역하며 하루를 열 것이다. 그 하루들이 쌓여 책 한 권을 완성하는 날이 오면 숨 한 번 크게 들이쉰 뒤 또 이만큼 해냈다고 자족할 것이다. 늘 그렇듯 그거면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