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의 <연년세세>를 읽다가 시장 통에서 30년 넘게 순대만 파는 할머니 얘기 앞에서 엉뚱하게 멈춰버렸다.
소설이나 현실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나는 늘 나지막이 그러나 곰곰이 내가 하는 일의 수명을 가늠해본다. 잘릴 일이 없으니 의지만 있다면, 키보드를 칠 힘만 있다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다고 농담처럼 말해보지만 이내 그건 의지의 문제가 아닐까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모든 일에는 깊이와 폭이 있고 에너지를 얼마나 쏟을지에 대한 나의 의지 같은 것도 있기 마련이니.
10년 차 번역가가 되어가는 이제야 이 일의 수고스러움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만큼 애착이 생겨 누가 뭐래도 앞으로 최소한 10년은 아니 20년은 이 일을 더 하게 될 것 같다. 물론 이 일을 향한 복잡 다난한 감정을 글로 다 풀어내려면 아마 한나절의 조용한 시간과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공간이 필요하겠지만 언어를 품고 또 갈고닦아야 하는 이 일에 있어 내 안에 무한한 욕망이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또 다른 자아는 이 일에만 전념해서는 안 된다고 나를 수시로 찔러댄다. 모든 프리랜서가 숙명처럼 안고 또 때로는 지고 가는 고민.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은 욕망과 상충하는 내 안의 또 다른 욕망이다.
더 이상 비싼 월세를 내며 전전하지 않도록 집도 사고 싶고, 아이들이 놀아달라 할 때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고, 부모님이 더 연로해지시기 전에 함께 여행도 가고프다. 이런 욕심들과 내 일이 벌어다 주는 대가가 맞닿을 수 없는 간극만큼 나는 종종 서글퍼진다.
허나 나에게는 별다른 재주가 없다. 아이 둘을 데리고 이만큼 하는 것도 대단한 거라고 종종 나 자신을 위로하기도 하지만 정말로 나에게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 한들 내가 남들처럼 이것저것 다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자신이 없다. 묵묵히 정해진 분량을 번역하고 또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고 나를 홍보하는 지극히 단순한(?) 업무만으로도 나는 벅차다.
번역가라는 직업을 한쪽에 밀어 두고 또 다른 직업을 가져볼 수 있을까? 가끔은 생각해 본다. 인스타나 유튜브에서 잘 나가는 이들의 삶에 나를 슬며시 대입해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나에게 그런 스포트라이트는 너무 뜨겁다. 내가 번역가가 되기로 한 것도 나의 성정이 그런 곳과는 맞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드러내지 않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 일도 제대로 못한 채 어설프게 다른 일을 벌이고 싶지는 않은 얄팍한 자존심도 있다. 나중에는 어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직 나는 번역가로서 더 나아가는 데 집중하고 싶다.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한 날들이다.
번역가가 된 이후 얻은 가장 큰 소득이 있다면 그건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에서든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도구를 얻게 된 건 평생 내가 나 자신에게 해준 그 어떠한 선물보다도 값진 것이었다. 내가 이 일을 오래 하게 된다면 그건 바로 이 선물 때문일 것이다.
글을 쓸 줄 몰랐다면, 혼잡한 시간 가운데에서도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면 내 삶은 조금 더 어두웠을 것이다. 글을 쓰려면 내 안으로 파고드는 시간, 차분히 생각의 결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돌아보면 그 시간을 만들어보려는 노력, 그래서 글을 쓰게 되는 시간이 나를 살렸다.
일주일에 한 번일지언정 글을 쓰면서 나를 보듬는다. 금요일의 내가 화요일에 아이들에게 소리 지른 나를 용서하고 수요일의 앙금을 잊으라며 나를 놓아준다. 그렇게 조금은 순해진 내가 다시 일주일을 살아간다.
이 모든 것이 내가 번역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10년 전 번역을 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번역을 잘하기 위해, 남의 글을 조금 더 잘 옮겨보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 나는 이제 글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다행인 건 번역가로 사는 한 글을 쓰는 일 또한 멈추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이 일을 오래 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