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식탁으로 출근하지 않는 여자

by 물고기자리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식탁에서 일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식탁으로 출근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에게도 책상이 생겼다는 말이다.


미국에 온 지 6년 만에 갖게 된 책상이었다.


책상 하나 사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6년이나 걸렸을까 싶지만 책상은 나에게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그리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내 일을 붙들고 있던 지난 6년 동안 나는 위태위태했다. 나의 책상 없음이 그 시절 나의 존재를 방증한다. 무엇이 나를 그러한 상태로 몰아갔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상태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드는 현실은 생각보다 굳건히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신랑을 따라 미국에 온 터라 내가 처음부터 뿌리내릴 수 있는 여건 따위는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 한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내가 어쩜 간신히 마련했을지도 모르는 내 자리는, 그렇게 그 뒤를 따라 났을지 모르는 나의 발자국은 또 서서히 잊히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한국에서 일을 받아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은 내 상황에서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사치였다. 그 사치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나는 위태위태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첫째 아이를 4년 내내 끼고 일했다. 3년 터울로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잠시 확보되는가 싶던 내 시간은 1년 남짓 다시 확 쪼그라들고 말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나는 악착같이 내 일을 놓지 않았다.


아이를 품에 안고 김칫국물 냄새가 채 가지 않은 식탁에 앉아 번역을 하고 글을 썼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해외에서 애 둘 키우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그래야 할 필요가 있냐고.


정말 그럴까? 답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을 거다.


돌아보면 그냥 나 하고 싶은 걸 했던 것 같다. 누가 시켜서라면 당연히 못했을 거다. 잠도 부족하고 시간도 부족하고 큰 돈벌이가 되는 일도 아닌 이 일은 좋아서 하지 않고는 못했을 거다.


그러니 부디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에게 '애 키우기 좋은 여자 직업'이라는 프레임을 씌우지 않았으면 한다. 두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있는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애 키우기 좋은 여자 직업이란 돈은 많이 벌고 일하는 시간은 적은 직업이라고. 아이와 놀아주는 가운데 돈 걱정 안 해도 되는 그런 직업이라고.


"곁에서 보기에도 육아는 휴일 없이 치르는 전쟁에 가까운데 그 와중에 일까지 하는 프리랜서가 어째서 좋은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나의 10년 후 밥벌이>)"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애 키우는 일과 프리랜서로서의 생활을 양립하는 삶의 '좋음'을 논할 때에는 동사의 주체가 반드시 그 일을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본인 이외의 사람이 왈가불가할 문제가 아니다.


다행히 나는 그 일을 많이 좋아했고 그랬기에 나의 일부를 희생해야 하는 심판의 순간 앞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올여름, 책상을 사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은 그런 나를 지키고자 함이었다.


지난 6년을 잘 버텨왔다면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의 반영이자 그동안 고생한 나를 승격시켜주는 일종의 상징적인 행위였다. 식탁에서도 바닥에서도 일만 잘하는 나였고 책상에서 일한다고 갑자기 글이 잘 써지고 번역이 잘 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둘째 아이가 두 돌을 넘기자 엄마로서 어느 정도의 의무는 털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의무가 기다리고 있겠지만 이제는 일과 육아를 희미하게나마 경계 짓고 싶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한 손으로 타자를 치던 시절과는 작별을 고하고 싶었다. 아이들에게도 엄마가 일하는 시간은 방해하지 말 것을 가르치고 싶었다. 코로나 덕분에(?) 모두가 집에서 일하는 시절이 찾아오면서 의도치 않게 첫째 아이는 신랑과 나의 부탁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도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책상은 효과가 있었다. 일할 때에는 가능하면 이 영역을 벗어나지 말자고 책상을 사며 나 스스로와 다짐했고 일과 육아의 경계를 짓는 일의 불가능함을 조금은 거슬러도 보았다. 내가 만들지 않았으면 애초에 생길 수 없었을 경계였다. 쉽지 않을 거라는 이유로 쌓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경계를 조금은 확보하고 나니 확실히 일도 잘 되고 글도 잘 써졌다.


며칠 전에 읽은 <글 쓰는 여자의 공간>에서 본 사진들이 생각났다. 글만 쓸 수 있도록 최적화된 널찍한 공간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은 공간은 제인 오스틴의 오각형 책상이었다. 사진 속에 보이는 그 책상은 정말 작았다. 노트 한 권 겨우 얹을 수 있을 만큼. 그 작은 책상에서 그렇게 위대한 글을 쓰다니 나의 널찍한 책상이 부끄러워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부끄러움과는 무관하게 나의 욕망은 점차 자라나고 있다. 책상을 마련하니 넘쳐나는 책들을 다 꽂을 수 있도록 책장도 큼직한 걸로 있으면 좋겠고 나만의 서재도 욕심이 난다.


당장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넘쳐나는 책들로 비좁아진 책상에 만족하지 못한 내가 어느 날 문득 앨리스 먼로의 단편 <작업실>의 주인공이 그런 것처럼 남편을 향해 이렇게 외칠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작업실을 얻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