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면 또 1인분의 일을 해치우기 위해 슬슬 몸을 가동한다.
짧은 출근길을 따라 도착한 그곳에 앉아 말도 덜고 말고 딱 1인분의 일을 시작한다. 그건 누가 정하냐고? 당연히 나다. 그럼 1인분의 적정량을 어떻게 알 수 있냐고? 그건 몸이 말해준다. 내 양보다 조금 먹으면 탈이 나듯 일 인분을 초과한 일을 한 날은 몸이 먼저 알아챈다. 눈이 침침하고 어깨가 뻐근하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짜증을 많이 낸다.
회사에 다닐 때에는 불가능했을 일이 지금은 가능하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일만 하고 내 역량이 뒷받침되는 일만 하기. 모든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 아이에게 조금 더 신경 써야 하는 날에는 기상 시간을 앞당겨 내 하루치 일할 분량을 확보한다. 아이를 재워 놓고 일할 때도 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참으로 부지런한 엄마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늘 피곤에 찌들어 아이 온라인 수업 시간에도 일어나지 못하고 아이를 재운답시고 같이 잠들어 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아이가 늦게 자는 건 내 탓이 아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남들처럼 우아하게 살기 위해 그러니까 번잡한 출퇴근을 피하고 나 먹고 싶은 메뉴를 정성스럽게 준비해 점심을 먹고 원할 때 훌쩍 여행을 떠난다든지 하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해 프리랜서가 된 게 아니다. 그렇다고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둬 경력이 단절된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출판번역가라는 직업을 갖고 싶었는데 출판번역가가 회사에 다니는 경우가 없는 것뿐이다.
물론 출퇴근 시간이 없는 건 나에게 진짜 큰 플러스 요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하고 준비하는 시간은 물론 출퇴근 시간까지 온전히 일하는 시간으로 쓸 수 있으니 말이다.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 책상이나 식탁에 앉아 곧바로 노트북을 열면 거기가 사무실이다.
아이를 안은 채로 일하기도 하고 수시로 말을 걸고 요구하는 아이들 때문에 일하다가 자꾸 멈춰야 하는 순간이 잦다는 아주 큰 마이너스 요인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플러스 요인과 마이너스 요인을 다 합치면 나는 플러스 요인이 많다고 본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삶의 정말 좋은 점은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일할 수 있다는 거다. 가면을 쓴 채 일할 필요도 상대의 비위를 맞추느라 감정노동을 해야 할 필요도 없다.
회사에 다닐 때에는 나를 위한 일보다는 회사를 위한 일을 우선으로 해야 했다. 내가 회사를 죽기보다 싫어했던 건 아니었다. 그랬다면 5년 동안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나의 성장에는 관심 없는 회사가 어느 순간 얄미워졌다. 회사를 위해 무가치한 몇 인분의 일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간소하고 알찬 1인분에 올인하고 싶었다.
그 1인분을 일을 찾아 결국 나는 프리랜서 번역가가 되었다.
1인분의 일만 해도 되는 삶은 정말 좋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 그 자체. 내가 회사에서 가장 싫어했던 일은 전표 처리 업무였다. 팀의 막내가 맡아야 했던 그 단순한 전산 업무는 커피 타는 일보다도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지금 내가 내 삶에, 내 일에 듬뿍 만족한다면 그때에 비해 돈벌이는 시원치 않을지언정 그 어느 때보다도 시간을 빈틈없이 잘 쓰고 있기 때문일 거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과감히 물리침으로써 내 삶을 조금은 더 위해주고 있는 기분이랄까.
바라건대 앞으로도 계속해서 1인분의 일만 하고 싶다. 오늘 설령 다 끝내지 못할지라도 내일의 나 또한 그만큼의 일을 해낼 거라는 믿으며 오늘 못한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는 자세. 게으름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우뚝 세우는 일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