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나를 모른다.
이 문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번역가로서의 나를 알고 있는 출판사나 에이전시도 많다(많으려나). 지인과 가족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것이 진리다.
이것이 10년 동안 책을 번역하며 살아온 나의 성적표다.
10년이면 한 분야에서 감을 잡고도 남을 시간이다. 하지만 그 감을 잡게 된 나와는 무관하게 이 세상은 나라는 번역가의 존재에 무감각할 뿐이다.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국에 와서 두 번의 출산을 경험했다. 그 결과물로 두 아이를 얻게 되었고 육아라는 또 다른 생활을 덤으로 얻게 되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이런저런 모임에 얼굴을 들이밀고 어떻게든 인맥을 쌓아보려 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실력만으로 판가름 나는 이 바닥(그렇다고 믿고 싶다)에서 그렇다 한들 나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을까라는 반문도 해본다.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어봤자 잠시의 위로뿐 근본적인 문제는 그곳에 그대로 남아있을 거다. 그러니 이곳에서 아등바등하는 나나 그곳에서 우왕좌왕하는 그들이나 큰 차이는 없을 거라 본다.
두 아이를 낳은 것은 분명 나의 경력에 큰 변수로 작용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겠다는 건, 그것도 둘이나 낳겠다는 건 내 결심이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기에 후회가 없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시간만큼 나는 고스란히 일을 못했지만 다행히 누군가와 경쟁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기에 조급한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나의 10년은 다른 누군가의, 그러니까 번역에만 올인했을 누군가의 삶과는 달랐다. 때로는 잠시 멈춰서 본의 아니게 나의 지난 몇 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기도 했고 나름 흐름을 타서 수익이 상승곡선을 그린다 싶을 때 일을 못하는 바람에 다시 곤두박질치는 경험을 해야 하기도 했다(돌아보면 그건 아이 때문이 아니라 프리랜서의 특성 때문인 것 같지만 당시에는 아이 때문이라 생각했다)
결국 10년이나 되었고 마흔 권에 가까운 책을 번역했지만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그러다 문득 그건 나의 잘못도 크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 나를 모르는 것은 내가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그래, 이제는 스스로 자기가 뭔가를 만들어야 해. 기회가 그냥 오진 않아." <불타는 청춘>에서 양수경은 말한다.
자고 일어나면 무언가 바뀌어 있는 세상. 나는 10년 정도 일하면 안정을 찾을 줄 알았는데 오늘 나에게 일을 준 출판사가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안정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안정을 기대할 수 없다면 흔들흔들하는 세상에 맞춰 나의 방향을 조절해야 했다.
기회는 그냥 오지 않았다. 나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올해도 나는 새로운 출판사 두 곳과 거래를 텄다. 내가 만들어낸 기회였다. 이 기회가 얼마나 큰 기회일지 작은 기회일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기회를 찾아 나서는 나에게 익숙해지는 게 중요했다.
지난 10년 동안 일감을 찾아 각자도생 하는 과정에서 나는 기회를 찾아 나서는 과정도 프리랜서 생활의 일부임을 알게 되었다. 부담과 스트레스가 수반되었던 이 과정을 즐기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나는 또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내년은 또 어떻게 될까? 내년을 무작정 긍정하지는 않는다. 올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의 경험을 예측할 수 없는 게 프리랜서의 생활이다. 내년에는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오도록 또 뭔가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뭐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자고 나면 바뀌는 세상 속에 답이 있을 거라 믿는다.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내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에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그려본다. 프리랜서에게 중요한 것은 10년의 계획을 세우는 일보다는 수시로 바뀌는 상황에 대처할 줄 아는 유연함이라는 것을 10년이 지난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미래에 다가올 인연에게 미리 안부 인사를 전해 본다. 언젠가 우리가 서로를 알게 되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