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책을 번역하고 받은 돈은 140만 원이었다.
당시의 작업 파일을 열어 계산을 해보니 매 당 1.131원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숫자가 나온다. 계산기가 미련하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책 한 권을 번역하는 데 보통 2, 3달이 걸리는 것을 생각할 때 적어도 너무 적은 액수였다(거의 10년 후에야 나는 초보 번역가가 받아야 하는 적정 번역료가 대략 매 당 3,500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지고 있다고, 그것도 형편없이 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이 처음 찾아온 것은 처음으로 이 세계의 매운맛을 보았을 때였다. 때는 2011년, 대학원 첫 학기를 마치고 책을 번역해 보기 위해 인터넷 구직란을 보고 한 에이전시에 찾아갔다. 훗날 문제의 에이전시로 밝혀진 그 회사의 사장이라는 사람은 사무실을 찾아간 첫날 나에게 다짜고짜 반말로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초보 번역가를 상대로 공짜 교육을 해준다고 생각한 나는 그때만 해도 순진했던지라 그 강의를 감사히 생각하며 시키는 대로 열심히 번역을 했다.
거기에서 끝났으면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래도 봐줄 만한 스토리로 마무리되었을 거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에이전시는 나 같은 초보자를 상대로 번역료를 등 처먹는 사기꾼이었다.
처음 세 권의 책은 별문제 없이 번역료가 입금되었다. 하지만 공역으로 진행하고 있던 책은 번역료 입금이 계속 늦어졌다. 처음 한 두 달은 계속 입금하겠다는 말로 버티던 그 회사는 결국 출판사 쪽과 소송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꺼내놓았다. 또다시 순진하게 믿은 나는 그저 가끔씩 연락해 상황을 확인하며 번역료 입금을 독촉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그렇게 1년 넘게 노력한 끝에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쪽에서 예상한 바대로 행동해준 셈이었을 거다.
그게 벌써 8년 전 일이다. 당시에는 정말로 사정이 안 좋아서 그랬을 거라고 그냥 자선 사업했다고 생각하자며 마음을 다스렸는데 알고 보니 피해자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 블로그에 글을 남긴 피해자만도 수두룩했다. 집단소송을 제기한다는 말도 오가던데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정말 지지 말자는 생각부터 든다. 이 바닥의 고질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나부터가 정신 바짝 차리자는 생각이 우선이다. 여유가 있으면 진짜 나서서 법적인 조치를 취하고 싶지만 당장 먹고살기 바빠 시간을 빼기도 어렵다. 생각할수록 우울할 뿐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 업체를 검색해 봤더니 아직까지도 버젓이 잘만 운영하고 있는 듯하다. 홈페이지 글들은 2017년에 멈춰 있었지만 2018년에 피해를 입은 분의 글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아직까지 계속해서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다. 어떻게 아직까지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믿기지 않는다.
관련 피해자들의 집단 소송을 위해 홈페이지도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큰 진전이 없나 보다. 나에게도 어떤 분이 관련 자료를 요청드려도 되겠냐고 묻길래 원하시는 건 뭐든 드리겠다고 했는데 그 후로 소식이 없다. 휴-
그 후로 나는 학생일 때 그러한 사건을 겪어 다행이라 스스로를 위안하며 수수료가 높아서 번역료는 적지만 돈은 제 때 주는 대형 에이전시와 계약하게 된다. 하지만 이 또한 마냥 좋은 거래는 아니었으니......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