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번역가에서 탈출하려면

by 물고기자리

가끔은 내가 메이저 세상에서 스스로 물러나와 마이너 세상으로 들어갔지만 다시 메이저 세상으로 올라가려고 바득 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벌이로만 본다면 나는 분명 마이너 세상에 속해 있겠지만 나에게는 이 마이너를 메이저로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주류 메이저와는 다른 메이저를 꿈꾸는 것이다.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고충이자 가장 큰 고충이 벌이 문제일 거다. 그중 일부, 그러니까 스타 유튜버나 작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이 겨우 빌빌대며 살아가는데 그 이유는 글을 쓰는 일의 벌이가 신통치 않다는 데 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조금 벌어 조금 쓰는 삶과 많이 벌어 많이 버는 삶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버는 것도 얼마 없으면서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을 책을 사는 데 써버리며 더 많은 돈을 벌지 못하는 현실을 한탄한다.




문제는 그나마 얼마 벌지 못하는 돈벌이마저 끊길 때다. 예전에는 일이 없는 기간이 한 달에서 두 달 세 달로 늘어질 때면 한결 같이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책 번역이라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건지 알 수 없는 이 길에 계속 머무는 게 맞는지 고민한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일이 정말 좋았으므로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이 일로 돈을 벌 수 없다면 부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업을 하기는 싫었다. 번역, 글쓰기라는 큰 테두리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가난한 번역가에서 벗어나려면 어떡해야 할까 머리를 쥐어짜는 나날이 일어졌다.


우선 나의 몸값을 올려야 했다. 번역가가 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이제야 나는 초보 번역가의 적정(?) 번역료가 매 당 3,500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메리 씨가 그렇게 공개하고 나서 일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수많은 초보 번역가가 그보다 훨씬 낮은 번역료를 받으며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내 주위에서도 초보 시절부터 그 비용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글항아리의 이은혜 편집자 역시 <읽는 직업>에서 그렇게 말한 바 있고.


나는 10년이 된 지금에서야 그 비용을 받고 일하고 있다. 물론 내 번역료는 그렇게 측정되었는데 에이전시에서 많이 가져간 것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직접 출판사와 계약하는 과정에서 나의 번역료를 3,500원으로 불렀을 때 계약이 성사된 경우는 올해부터다. 그 전에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번역료와 너무 차이가 나서 계약이 힘들겠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그때마다 마음이 약해져 번역료를 낮춰주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상한선을 정해 놓고 불렀는데(물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약간 조정이 가능하다는 여지를 두며) 별 무리 없이 두 건 다 성사가 되었다.


사실 나는 아직도 번역료가 측정되는 기준을 모르겠다. 누군들 알까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시간 대비 많은 돈을 벌려면 내 몸값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실력도 함께 높여야 하겠고.


또 다른 방법은 쉬운 책만 하는 거다. 이건 정말 하고 싶지 않은 방법인데 난해하거나 어려운 책보다는 단순한 자기 계발서나 경제경영서가 일하는 시간이 적게 소요되는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건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므로 일부러 찾아서 하지는 않겠다고 스스로와 다짐해 본다.


셋째는 일의 꾸준한 수급을 위해 나를 홍보하는 거다. 이건 몸값을 높이는 활동과 사실 같은 맥락으로 '이런 번역가가 있으니 갔다 쓰십시오'라며 다양한 채널을 통해 나를 알리는 것이다. 올해 중순부터 브런치와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아직은 초보 단계이지만, 직접적인 혜택을 본 것은 없지만 간접적인 혜택은 넘치도록 누리고 있다.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던 이 활동들이 사실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직접 해보고 나니 알겠다. 꾸준히 하면서 나만의 브랜드를 쌓아가는 것, 그게 장기적인 목표면 목표라 하겠다. 내가 생각하는 적정한 노동의 대가를 당당히 확보할 수 있는 날까지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노동의 대가에 대해 내가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본 건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찾아간 설계사무소의 알바 면접 자리에서였다. 무급으로 일하기를 요청하는 사장님의 말에 잠시 시간을 달라고 한 나는 부모님과 상의한 끝에 도저히 할 수 없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돌아왔다. 그 날의 씁쓸함에 대해서는 나 혼자만 간직하고 있다가 졸업하고 곧바로 건설회사에 취업하는 걸로 갈무리했다.


나는 내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원한다. 더 많이 주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정당한 대가를 바랄 뿐이다. 정당한 대가가 나의 실력과 비례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나를 알리는 노력도 실력의 일부라는 것은 이 바닥에 발을 디딘 지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결국 가난한 번역가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단순했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 실력을 겸비하고 나를 알리는 노력을 멈추지 않기.


더불어 정성을 다해 만든 비싼 제품에 흔쾌히 지갑이 열리는 것처럼 정성을 다한 번역에도 모두의 지갑이 활짝 열리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