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더 밀레니얼”에 속한 나는 비교적 ‘쉽게’ 취업을 했다. 어학연수 한 번 다녀오지 않고 이렇다 할 자격증도 하나 없던 난 몇 군데 지원한 끝에 모 건설회사에 들어갔다. 내 나이 스물넷이었다.
그렇게 5년을 다닌 뒤 회사에서 한 번 정리해고가 있었다. 코로나로 얼마 전 신랑 회사에서 칼바람이 불자 난 IMF를, 그리고 내가 경험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떠올렸다. 안전한 자리는 없었다. 사실 조직에 속해 있는 한 그렇게 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언제든 해고의 도마 위에 오를 수 있었다.
좋아하지도 않는 조직에서 어느 날 그렇게 쌩 하고 날아가는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동기들끼리 점심 식사 후 회사 근처 커피숍에서 아이스 라테를 마시며 나도 이런 커피숍이나 차렸으면 좋겠다, 따위의 대화를 반복할 무렵이었다. 아무나 그런 커피숍을 차릴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 커피숍 주인은 우리가 쉬는 주말에도 쉬지 못할 거라는 사실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순박한 푸념이었다.
그런 푸념이 유난히 꼬리가 길어지는 날, 그런 거 말고 내가 정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해본 것이 시작이었다. 그러니까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결정이 적어도 홧김이나 그 날의 기분 같은 일시적인 마음 때문은 아니었다.
5년 다녔으니 부모님에게도 면목이 섰다고 생각했다. 5년을 다디는 동안 이런저런 효도도 했고 돈도 벌었으니 이제 더 늦기 전에 오래도록 마음을 다해 할 수 있을 일을 찾고 싶었다.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을 이용해 짬짬이 공부를 이어나갔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관련 책이나 블로그를 찾아보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의 뼈대를 세워나갔다.
그렇게 나름의 밑 작업을 완료하고 나는 계획한 대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내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얻게 된 위태롭고도 자유로운 1년은 내 인생에 다시없을 시간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스톱한 1년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줬는지.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그 시간이 한편으로는 얼마나 많은 자유를 의미했었는지.
무시무시했던 통번역 입시학원과 대학원 2년은 내 인생에서 겪을 마지막 경쟁 무대였다. 뒤에 숨기 좋아하는 내가 그런 곳을 거쳤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지만 그때는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패기가 남아 있을 때였다. 그렇게 나의 인생에 어떤 식으로든 살을 붙여줬을 그 모든 긴장 어린 순간들을 건너고 건너 난 이제 출판번역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운에 올라타기도 하고 뒤로 나자빠지기도 하며 나름의 정상을 향해가고 있는 지금, 드문드문 경치도 감상하면서 올라갈 여유가 조금은 생긴 지금,
나는 서른아홉 살이다.
모든 변화가 위로 향하는 도약일 필요는 없다. 안 가본 길을 향한 과감한 시도도 있겠지만 아래로 향하거나 심지어 뒤로 가는 경로도 있을 수 있다. 누군가에는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그렇게 읽혔을지도 모른다.
회사를 그만둔 나를 보고 누군가는 안정적인 삶을 박차고 나가는 어리석은 청춘이라 욕했을지도 모르겠다. 완벽은커녕 위태위태해 보이는 시작이었을 테니. 하지만 시작이란 그런 것이다. 모든 시작이 완벽하다면, 우리에게는 시작을 시작할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완벽한 시작을 꿈꿨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조금은 미완성인 상태였지만 그동안 준비한 나를 믿고 사소한 용기를 내는 순간 비로소 진정한 시작이 내 앞에 펼쳐졌다.
언제까지고 생각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일단 길에 들어서야 비로소 그 길이 잘못 들어선 길인지 잘 들어선 길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언제나 긴 여행의 도중이므로 나를 잘 붙들고 가는 한 시작은 아무래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