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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Jul 29. 2020

주저앉는다는 건 어디론가 가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이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책을 읽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 요 며칠이었지만 주말에 잠시 짬을 내 문보영 시인의 글을 읽었다.


“나는 어디론가 가고 있기 때문에 주저앉지 않을 수 있었다”라는 문장 앞에 우뚝 멈춘 건 ‘주저앉음’이라는 단어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인은 어디론가 가고 있기 때문에 주저앉지 않게 되었지만 나는 “주저앉는다는 건 어디론가 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항시 멈춰있는 사람이 주저앉는다는 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주저앉는다는 건 늘 움직이는 사람의 몫이다.


나는 늘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없을 때에도 그랬건만 두 아이를 돌봐야 하는 지금은 분 단위로 쪼개 움직일 만큼 바쁘다.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내가 요즘은 ‘주저앉고’ 싶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잠시 멈추고 싶다. 하루라도 좋고 일주일이면 더 좋고 한 달이라면 바랄 게 없겠다.


존버의 삶은 내가 지향하는 삶이 아니다. 잠시라도 ‘해야만 하는 일들’의 노예가 아니라 ‘할 일 없음’의 왕이 되고 싶다.


지금의 삶이 불만족스러워서가 아니라 더 잘 살기 위해서다. 나는 늘 어디론가 가고 있었으므로 주저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주저앉으면 내 자리를 메워줄 이가 없다. 그래서 난 주저앉을 수가 없다. 이건 지옥일까 천국일까.


주저앉음이라는 단어의 유혹 앞에 한참을 서 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하루의 반복. 주저앉을 수 없다면 조금은 가라앉아볼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 삶이 조금은 가벼워진다면 일단은 그걸로 만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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