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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Jul 11. 2020

집집마다의 사정

지난주부터 집 중개 사이트를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들락날락한 끝에 (아직 최종 확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드디어 살 곳을 구했다.


동네가 조금 달라져 100퍼센트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나마 나은 집을 찾은 것으로 일단 수긍하기로 했다. 그 과정이 쉬이 흘러가지만은 않았으니 추가 서류를 요청하는 중개인의 반응에 여러 번 마음을 다친 며칠이었다.




미국은 한국처럼 전세 혹은 보증금 얼마에 월세 얼마 이런 식으로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냥 다달이 월세를 내야 하는 시스템인데 한 달 월세가 꽤 큰돈이기 때문에 기본 보증금(보통 한 달 치 월세)에 몇 달치를 더 추가해서 한꺼번에 내야 하고 몇 달에서 1년 치 월세를 낼 수 있음을 입증하는 통장 잔고 내역을 비롯해 월급 명세서, 세금 정산 내역 등등 온갖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집주인이 마음에 안 들면 그걸 다 내고도 아웃될 수 있다.


당연히 우리에게 저축한 돈이 있을 리 없었고 급한 대로 내 한국 계좌에 있는 돈을 송금하고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어 잔고 내역을 제출했으나 곧바로 부족하다는 전화가 왔다. 그 후로 이것저것 더 추가해서 보냈는데도 중개인은 뭐가 자꾸 부족한지 이것저것 더 요구했다.


결국 부모님께 손을 조금 벌리고 말았으나 그 과정에서 계속 참고 있던 내 안의 자아가 폭발하고 말았다. 미국에 온 지 7년이 되어가건만 집도 없고 차도 없고 통장 잔고도 너무 없는(사실 마이너스인) 지금의 상황이 너무 화가 났던 것이었다. 집주인들의 오만한 태도도 나를 분노하게 했는데, 나는 그 모든 것이 너무 화가 나 신랑에게 결국 한 소리를 했다. 불쌍한 신랑에게 아무런 죄 없는 신랑에게.


엄마 아빠가 일구던 예전 우리 가족이 그랬듯 어느 가정에나 남들에게 차마 말 못 하거나 말하기 꺼려지는 사정이란 게 있다. 어쩜 그것이 가족을 더욱 단단히 묶어주는지도 모르지만 그 사정 때문에 지난 며칠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면서 나는 조금 단순하게 살 수는 없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이미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면서 단순한 삶을 갈망하는 것 자체가 모순일지 모르지만 이 모든 것이 내가 내려놓지 못하는 어떠한 욕심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추구하는 정체성도, 내가 추구하는 가치도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다. 엄마로서의 나도 그렇고, 한 인간으로서의 나도 그렇고 결국에는 남들이 사는 만큼 살고 싶어서 남들의 기준에 의해 휘청이는 것 아닌가.


허나 2년 후에는 어떻게 서든 꼭 집을 사고 말겠다고 다짐하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계속 이사를 다니는 것도, 거만한 집주인들에게 무시당하는 것도, 이방인으로서 당하는 치사한 일들도 이제는 넌더리가 난다.




코로나로 주위에 무너진 가정이 속출하는 지금, 연락조차 안 되는 친구들도 있다. 모두가 저마다의 사정을 안고 지금 이 힘든 구간을 넘어가고 있는 것이리라. 각자의 사정이겠거니 생각하고 굳이 무리해서 연락을 시도하지는 않고 있지만 마음이 전해진다면 나도 이렇게 견뎌내고 있으니 너희도 부디 그러길 바란다고 영혼의 안부를 건네고 싶다.


그리고 이 위기가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다 같이 모여 웃음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담소를 나누자고, 그때를 생각하며 나도 이 시간을 잘 보내 보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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