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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Jul 03. 2020

이 여름에 이사라니

코로나의 여파를 크게 실감하고 있지 못했던 건 수많은 미국인이 실업자가 되는 가운데 우리는 괜찮다는 안도 때문이었을 거다.


월요일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룻밤 자고 나니 IMF 때를 떠올리게 하는 정리 해고가 신랑 회사에서 일어났다. 피의 화요일이었다.




다행히 신랑은 살아남았지만 우리 부부와 가장 친하게 지내는 커플들이 전부 칼바람을 맞았고 칼바람을 겨우 피해 처마로 몰려든 나머지 사람들은 감봉이라는 결과를 맞이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도저히 지금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신랑과 나는 이틀을 고민하고 결국 이사를 결정했다. 지금 집은 (이 와중에 월세를 올려 받으려는 집주인의 욕심이 더해져) 한 달에 2,800달러였다. 방 하나 치고는 비싼 편이었지만 세탁기와 건조기, 에어컨, 난방까지 전부 다 되는 곳이 흔치 않은 터라 2년 동안 기꺼이 감수하고 살았던 터였다. 한 달 전 재계약을 마음먹은 신랑과 나는 한 달 만에 바뀐 상황에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신랑은 눈에 띄게 허탈해했다. 나는 내가 괜찮은 줄 알았지만 밤에 누우면 잠이 오지 않았다.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한창 더운 8월에 이사할 생각을 하니 잠이 올리 없었다. 게다가 어떤 집으로 가게 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보통 매물이 나오면 바로 계약해서 들어가거나 최대한 한 달 후에 들어가는 게 이곳의 시장이다). 마음이 자꾸 덜컹했다.


엄마에게 말하니 IMF 때가 생각난다 했다. 당시에 나는 고등학생이었는데 갑자기 달라진 집안 분위기, 엄마 아빠의 잦은 싸움 등을 고스란히 겪기는 했지만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울한 상황이 싫었지만 그저 내 몫을 다하며 그 시간을 나름 견뎌내고 있었지만 내 집이 아니라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뭘 해볼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두 아이를 키우는 지금에서야 엄마 아빠의 마음을 돌아본다. 아빠는 갑자기 실직하고 그와 비슷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좌절했을까. 엄마는 갑자기 수입이 없어진 상황에 얼마나 허탈했을까. 그때의 엄마 아빠의 고민까지 얹어져 채한 것마냥 잠이 더 오지 않는 밤이었다.


이사를 간다 하더라도 생활은 힘들어질 것이다. 내가 번역해서 버는 돈은 생활비에 보태는 정도인 데다 들어오는 날이 일정치 않기 때문에 그것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는 없다. 그래도 안 버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더욱 열심히 일해야 하는 이유가 또 생긴 거다(얼마 전 세 권의 책을 동시에 계약했는데 아무래도 이런 일이 있으려고 그랬나 보다). 코로나가 지속되면 신랑이 갑자기 직장을 잃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마지막 시나리오까지 생각해 보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곧바로 인근 집 매물을 알아보기 시작한 나는 아직 괜찮다고, 우리 둘 다 건강하고 아이들도 건강하니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는데 그러다 보니 새로운 집들의 장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탁기는 없지만 에어컨도 사다가 달아야 하지만 그래도 지금 집보다 조금은 더 넓은 집들을 보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조금은 더 많아질 거라는 생각에 살짝 들뜨기도 했다.


바라건대 내 마음에 드는 집이 하루빨리 나타났으면 좋겠다. 잠 못 드는 밤과 인사할 수 있도록.

 



짐을 쌀 생각을 하면 한숨이 먼저 나오지만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허무해하고 있을 그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고민은 감사한 일에 가까울 거다. 우리가 둘이라서, 아니 넷이라서 다행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의 해맑은 질문에 웃을 수 있는 지금이라 감사하다.


잘 지내셨는지요?
오랜만의 기별입니다.
눈 드물던 겨울과 입 다문 봄 지나
벌써 뜨거운 여름이네요.
예년과는 다른 여름입니다.
말 배우는 아이처럼,
우린 또 배워나갈 겁니다.

여름의 끝까지,
지치시지 말기를 바라며...

2020 여름 김연수


아침에 본 김연수 작가의 엽서 글은 마치 나를 향한 안부 인사 같았다. 그이의 말처럼 내가 여름의 끝까지 지치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 모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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