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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Jul 01. 2020

나의 두 사람이 보내준 택배

지난주, 엄마가 한국에서 보내준 택배가 열흘 만에 도착했다.


평소 때 같으면 3일이면 올 것을 코로나 때문에 일주일이 늦어진 참이었다. 여름이라 안에 든 반찬들의 상태가 걱정이 되긴 했지만 택배 상자 안에 이것저것 다 넣고 싶은 엄마의 욕심이 누구보다 크다는 걸 알기에 그저 하루라도 빨리 택배가 도착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무사히(?) 도착한 택배 상자 안의 명란젓은 오묘한 냄새를 풍겼고 엄마가 쪄서 보냈다는 쑥은 한여름의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거품을 한 가득 머금은 채 상자며 주위 물건들에 진한 자국을 남겨놓고 있었다.


택배가 도착하기 직전, 하필 나는 김달님의 《나의 두 사람》을 읽고 있었다. 코끝이 찡해지도록 슬프게 만들다가도 갑자기 어이없게 웃겨버리는 그이의 글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가 택배를 받으니 마음이 어수선했다.


어떻게든 다 보내주려는 마음에 엄마가 여기저기 쑤셔 넣은 물건들, 중간중간 녹색 쑥물로 물들어 버린 물건들을 보고 있자니 그걸 사모으거나 만들고 또 이리저리 정렬해 봤을 엄마의 작은 손과 등 따위가 그려져, 나의 두 사람이 그려져 목 근처가 뜨거워졌다.


아직은 더 키워봐야 알겠지만 자식을 낳아보니 아이들이 기억하지 못할 순간을 나는 많이도 담고 있다고, 아마 그게 바로 부모가 얻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니겠냐는 생각이 든다. 부모는 자식이 기억하지 못하는 무수히 많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어서 그렇게 애틋하고 애가 타는가 싶기도 하고.


엄마 아빠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무수한 순간들을 디딤돌 삼아 여기까지 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엄마 아빠가 나의 역사구나, 나도 기억 못 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 행복하기도 힘들기도 했겠구나,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박준 시인은 나의 두 사람의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에게 품게 된 빚은 아주 긴 시간을 지나 빛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생각은 마음이 되고 오해는 이해를 부르며 미안함은 결국 고마움을 데려오는 것이기에. 나의 두 사람은 빚이 빛으로 변하는 순간들로 가득하다. 느린 걸음처럼 천천히 따라 읽다 보면 어느 먼 산동네의 집에 불빛이 켜지듯 마음 한구석이 밝아진다. 그러고는 우리에게도 있는 소중한 두 사람의 얼굴이 성큼 다가온다.


나의 두 아이를 키운다고 바쁜 나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을 나의 두 사람. 나의 두 아이가 얼마나 빠르게 자라는지 살피느라 나의 두 사람이 얼마나 늙어가고 있는지 미처 눈에 담지 못했던 나. 그 두 사람의 얼굴이 성큼 다가오는 밤이다.




택배 같은 건 보내주지 않아도 되니 엄마 아빠가 건강하게만 지냈으면 좋겠다. 내가 돌아보지 못했던 시간이 어느 날 후회로 날 갑자기 덮쳐오지 않도록 시간이 조금만 더 느리게 흘러갔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엄마가 그렇게 가고 싶다는 마추픽추에 가야겠다. 나의 두 사람이 더 나이 들기 전에 두 발로 여행 다닐 수 있을 때 다녀와야 한다고 김달님이 말해주지 않았던가.


그나저나 달님은 글을 참 잘 쓴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로 사람의 마음을 붙드는 법을 안다. 오늘밤은 엄마가 보내준 숏다리를 뜯으며 그이가 풀어내는 또 다른 이야기 《작별인사는 아직이에요》 를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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