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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Jun 18. 2020

나와는 다른 남자와 산다는 것

신랑은 다정한 사람이다.


내가 간혹 화를 내거나 하면 정말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사랑은 이렇게나 큰데 도대체 뭐가 문제지, 라며 정말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곤 한다.


그런 어이없는 대처에 나의 화는 대체로 잠잠해지며 결국 나만 사랑을 덜 베푸는 사람, 나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결론으로 마무리되지만 어찌 보면 사실인 것도 같아 나는 그저 잠자코 있게 된다.


나의 화에도 묵묵히 넘어가는 그를 보면 사람이 지닌 다정함에도 총량이 있을지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신랑은 나와는 참 다른 사람이다.




신랑과 나는 아이들을 키우는 데 있어서도 참 다르다.


나는 아이들이 조금만 넘어지거나 부딪힐 것만 같아도 심장이 벌렁대는데 신랑은 아무렇지 않아 한다. 별 일 아닌대도 내 심장은 자꾸 나대고, 신랑은 간혹 나대는 내 심장 때문에 놀라곤 한다.


하지만 이 가벼운 심장은 큰일이 발생하면 오히려 차분해진다.


아이가 가위에 살이 잘려 응급실에 간 적이 있다. 마취가 잘 되지 않아 너덜거리는 살에 계속 주삿바늘을 꽂고 또 꼬매는 내내 아이는 자지러지듯 울었는데 그 옆을 지킨 건 나였다. 싸온 밥을 아이에게 먹여가며 아이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애쓰는 나와는 달리 신랑은 내내 죽상이었다.


나는 사건이 발생할까 봐 전전긍긍하지만 일단 발생하면 의외로 덤덤하다. 어차피 발생한 일 어쩌겠냐는 마인드다. 하지만 신랑은 그걸 곱씹는 스타일이다. 왜 그랬을까... 안 그랬을 수도 있는데, 하며.


신랑과 나의 가장 큰 차이는 다정함의 총량이라기보다는 방광의 총량일 거다.


나는 밤에도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거리지만 신랑은 진짜 몇 시간에 한 번 갈까 말까다. 어젯밤만 해도 나는 세 번의 꿈을 꿨는데 꿈이 격동적인(?) 마무리에 이를 때마다 잠에서 깼고 그때마다 요의를 느껴 화장실로 향했다.


잠귀가 밝은 나와는 달리 내가 뭘 하고 돌아다니든 코를 골며 잘 자는 것 또한 나와는 다르다.


술을 잘 마시는 나와는 달리 맥주 몇 모금에 얼굴이 발그레해지며 잠을 청하러 가는 것도 나와는 많이 다르고.


소설을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소설은 절대 읽지 않고 사실만을 다룬 역사책을 좋아하는 것도 나와는 한참이나 다르다.




이렇게 다른 것 투성이인 우리가 아이들을 함께 키워서 다행이지 싶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해가며 처음 맡은 부모로서의 역할을 하나씩 수행해 가고 있다.


첫째 아이를 보면 신랑을 닮은 것 같지만 또 별 거 아닌 거에 호들갑을 떨 때면 영락없는 나다. 둘째 아이의 천방지축 모습에 쟤는 누구를 닮아 저러냐고 서로 묻지만 말하지 않아도 우리 둘 다 답을 알고 있다.


아이들이 우리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가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랄 뿐이다. 서로 닮지 않은 사람도, 아니 어쩜 그래서 함께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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