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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Jun 06. 2020

술 한 잔 하고픈 날(feat. 아무튼, 술)

술이 마시고 싶다.


이건 순전《아무튼, 술》을 본 부작용이리라.


미국으로 넘어온 이후 술자리다운 술자리에 참석해본 적이 없는 나는 실로 '착한' 생활을 해오고 있었는데 그렇게 참고 있던 내 안의 술꾼이 이 책을 보는 내내 꿈틀꿈틀 요동쳤다.




나는 술자리도 좋아하고 술 자체도 좋아한다(이렇게 쓰고 보니 진짜 '술'이 당긴다). 한국에 살 때, 특히 20대에는 친구들과도 곧잘 술자리를 가졌고 회식 때에도 강요 반 자의 반으로 술을 즐겼다.  


그런 내가 현재 금주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는 건 음...... 여러 요소가 작용한 결과다.


우선 나는 간이 조금 안 좋다. 20대에야 부어라 마셔도 괜찮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다음 날 속이 과하게 쓰리다 싶으면 간이 걱정이 되었고 그때부터 그렇게 조금씩 자제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상의 이유고 좀 더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보자면 임신 기간에 금주를 하고 연이어 육아를 하면서 아이들을 딱히 맡길 곳이 없었던 터라 술을 마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가장 가까운 술상대인 신랑은 주량이 나와 비교가 되지 않게 약하다. 같이 마실 사람이 없으니 점점 안 마시게 되었는데(나는 혼술보다는 함께하는 왁자지껄한 술자리를 좋아한다) 뭐 한편으로는 아이를 맡길 든든한 사람이 있어서 좋은 면도 있지만 그래도 혼자, 그것도 두 아이들이 보는 가운데에서 술을 마시기란 영 흥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술》을 읽는 내내 고등학교 친구들과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해가며 죽어라 마셨던 것, 대학교 친구들과 부어라 마셔라 했던 것, 원치 않은 곳에서 원치 않은 모습을 보였던 흑역사들이 떠올라 눈물이 찔끔 났다. 딱 한 번만 그때로 돌아가 다음 날 걱정 따위 훌러덩 던져버리고 마음껏 마시고 싶었다.


내가 술을 잘 안 마시게 된 건 아이들 때문이 사실 가장 컸는데,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는 것도 그렇지만 아이들 앞에서 취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였다. 하지만 아이들도 언젠가 받아들여야 할 모습일 텐데. 다른 이들은 어찌 대처하고 있는지 진심 궁금하다.


가끔 가족들 몰래 혼자 한국에 가서 좋아하는 지인들과 술을 마시는 상상을 하곤 한다. 상상만으로 몸이 달달해지는 상상.


상상뿐이기는 하지만 나에게 한 때 그런 추억이 있었기에 그런 상상도 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때를 재현하게 될 날이 올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각자 육아하느라 바쁜 친구들과 언젠가 다시 모여 그 시절처럼 마실 수 있기를 소망한다.




현실에 발이 묶여 있는 지금은 식사를 하다가 그냥 와인 몇 잔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그렇게 입을 쓱 닦을 때면 모든 비밀을 폭로해버릴 것만 같은 알딸딸한 상태가 가끔 그립기는 하지만 더 이상 폭로할 비밀 따위도 간직하고 있지 않은 나이인지라 '그래, 지저분한 뒷감당이 없는 여기까지가 딱 좋아' 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래도 코로나가 끝나면 누구라도 붙잡고 제대로 한 잔 하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 기간 동안 잘 버텼다며 나를 상찬하는 시간도 필요하니까. 나와 같은 마음으로 술 한 잔 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멀리서나마 마음의 건배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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