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일하는 엄마의 마음

집에서 일하는 엄마

by 물고기자리

아이를 돌보는 것, 그것이 보수가 있는 일이라면 쉬웠을지도 모른다. 대가가 명확한 노동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가치만큼의 일을 하고 나서 속 시원히 뒤돌아서면 그만이다. 허나 사랑이라는 코인으로 굴러가는 이 무한한 노동은 내가 얻게 될 보상뿐만 아니라 업무 분량조차 명확하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 노동자를 피로하게 만들며 때로는 명확한 업무에 우선순위가 밀리고 말기도 한다.


하루를 보내고 나면 예의 반성의 시간이 찾아온다. 내 일을 한다고 아이를 너무 방치하지 않았나, 나를 방해하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동영상을 너무 많이 보여주지는 않았나, 정신없다고 아이를 제대로 먹이지 않은 건 아니었나, 아이의 웃음을 지나치거나 아이를 한 번 더 안아주지 못한 건 아니었나 등등 자기반성의 목록은 끝도 없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욕심은 애초에 불완전한 나를 낳을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남들 눈에는 아이도 보면서 내 일도 하는 부러운 엄마처럼 보일지 몰라도 현실은 빚 좋은 개살구마냥 남루하기 짝이 없다. 일을 할 때에는 아이들 걱정이고, 아이들을 돌볼 때에는 온통 일 생각뿐이니 이리도 비효율적인 삶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아이를 처음 가슴에 품었던 날의 다짐은 일상의 의무 속에 어느샌가 저만치 달아나버리고, 한정된 시간 속에 많은 일을 욱여넣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나는 전투에 내던져진 전사처럼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 닥치는 대로 처리해나간다.



보수가 없다고 징징대지만 어쩌면 나는 사랑이라는 코인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이미 보상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이를 돌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일 뿐이고 때로는 아이들이 나를 돌보기도 한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일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그 뜨끈한 몸뚱이를 곧바로 안을 수 있는 건 집에서 일하는 엄마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물론 아이들을 돌보는 가운데 내 일을 하는 모습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 아이의 요구는 끝도 없고 이에 맞서는 나의 욕구도 만만치 않다. 이 둘 간의 조율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그 날 하루의 피로도가 결정된다.


일이고 뭐도 전부 집어치우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도 있다. 왜 그렇게 스스로 피로하게 사는 거냐며, 내 안의 게으른 자아가 목소리를 높이는 날이다. 돈이 되는 일만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으냐며, 나는 결국 아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간다.


내 눈에는 별 것도 아닌 경치에, 꽃 한 송이에 감탄하며


"엄마, 꽃이 정말 많다. 진짜 예쁘다, 그치?"


하는 아이의 말 한마디에 달뜨듯 웃어버린 나.


아이를 돌보는 일은,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그 어떤 일보다도 큰 보상을 받는 일이었다.




아이는 이렇게 자신의 곁에서 일을 하는 나를 어떻게 기억할지. 아이의 평가가 두려운 날도 있다. 엄마는 집에 있지만 계속 일만 한다고, 나랑 안 놀아준다고,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고 냉정한 평가를 내릴지도 모르겠다.

그런 날이면 나는 이슬아 작가의《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본다. 이 책을 보면 생계를 위해 다양한 일을 해온 이슬아 작가의 부모님과 그걸 덤덤히 그려나가는 이슬아 작가의 모습이 함께 보인다. 그 시간이 있기까지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헐거워졌거나 조여졌을 그들의 삶을 상상해본다.


이슬아 작가의《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부족한 엄마라고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싶지는 않다. 나를 상하면서까지 무리하고 싶지는 않다. 그 바람에 아이를 사랑할 마음마저 쪼그라들어버리게 만들고 싶지는 않으니까. 지금처럼 아이의 손을 잡고 나갈 여유 한 줌은 남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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