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책상은 요원하지만

일하는 엄마 이야기

by 물고기자리

식탁에 앉아 커피 잔을 들었다가 쿵, 하는 소리에 바로 내려놓았다. 둘째 아이의 머리가 바닥에 닿는 소리였다. 우는 아이를 진정시키고 기저귀를 갈고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첫째 아이를 따라 마지못해 화장실로 향했다. 다시 식탁으로 돌아왔을 때 커피는 애매한 온도를 머금은 뜨뜻미지근한 상태였다.


《아무튼, 서재》를 쓴 목수 김윤관은 말한다.


돈과 자기만의 방이 여성이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갖기란 버지니아 울프의 선언에서 100년이 지난 지금도 몹시 지난한 일이다. 우리가 최우선으로 소유해야 할 것은 ‘책상’이다. 어떤 사람에게 ‘자기만의 방’이란 어쩌면 버거운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만의 책상’이란 얼마나 적절한 사물인가.




책들이 빼곡히 들어선 책장이 병풍처럼 서 있는, 책 좀 읽는다는 걸 보여주고픈 자의 의식적인 공기가 무겁게 흐르는 서재 따위는 나에게 애초부터 사치였다. 때로는 반찬 국물이 그대로 남아 있고 아이가 짓이겨 놓은 밥풀 자국이 미처 닦이지 못한 채 멀건 흔적을 드러내고 있기도 한 식탁이 나에겐 작업 공간이자 ‘자기만의 책상’이었다.


사적인 공간과는 거리가 먼 가족의 식탁이었다. 한 편에는 잡다한 메일이 쌓여 있기도 했고 아이의 간식이, 물 컵이 한 자리 차지하고 있기도 했다. 이 식탁에서 돈이 되는 번역을 하기도, 돈이 되지 않는 글을 쓰기도 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욱여넣은 채, 돈이 되지 않는 책 읽기에 몰두한 날도 있었다. 돌이켜 보면 어떤 행위든 다 보람차고 즐거웠다.



첫째 아이가 두 살 되던 해, 난 과감히 식탁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작업 공간을 조금은 더 넓게 쓰고 싶었다. 어차피 공유할 거면 내 공간을 조금 넓히고 싶었다. 그래 봤자 나만의 공간이 되는 일은 여전히 요원한 일이지만. 그림 그리기에 재미가 붙은 딸아이는 동생의 훼방을 피해 식탁으로 올라왔고 그렇게 밀리고 밀린 나는 특정 시간에 식탁의 일부를 간신히 점유할 뿐이다.


이런 처지의 나라서, 여느 번역가에게 필수라는 화려한 번역 장비 따위는 생각할 수조차 없다. 듀얼 모니터나 올바른 자세를 유지시켜준다는 의자는 사치다. 간신히 앉을 시간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나에게 값비싼 의자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래도 난 줄기차게 식탁으로 출근한다. 대기업 목걸이를 딸랑거리던 시절 나에게 주어진 깔끔한 사무실 책상보다 온갖 잡동사니로 넘칠 지경이라 사적인 공간은 허락조차 되지 않는 식탁일지언정 그지없이 소중한 까닭은, 나름의 성장을 겪고 있는 작은 동료들과 함께하는 시간과 그 공간이 선사하는 한 줌의 자유 때문일 거다.

식탁으로 출근하는 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둘째의 작은 얼굴을, 잠에서 막 깨 반쯤은 아직도 꿈나라를 헤매는 듯한 그 멍한 얼굴을, 시큼한 땀 냄새와 우유 비린내가 얽히고설킨 중독성 있는 입 냄새를, 한쪽으로 씰룩대는 입 꼬리와 반사적으로 번쩍 올라가는 오동통한 발까지 모두 느낄 수 있다. 자고 일어나면 그 사이 자라 버려 또 다른 모습을 하고 나를 향해 오는 그 얼굴을 시시각각 바라보는 건 이제 포기할 수 없는 무엇이 되어버렸다.


지시하는 사람 없이 혼자만의 어른으로 일하는 건 또 얼마나 큰 자유인가. 편한 옷 하나 걸치고 일 하고 싶을 때, 일 할 수 있을 때 그저 노트북 전원을 쓱 켜면 되는, 이보다 편한 직업이 어디 있을까. 사실 회사에서 주는 돈은 실질적인 일에 대한 대가라기보다는 온갖 부당함과 쓴소리를 견디라고 주는 것이니 그런 잡음이 제거된 상태에서는 수중에 들어오는 돈이 적을 수밖에 없다. 간선이 없다는 건 보호도 없다는 것이니. 허나 내가 노력한 만큼 얻는 정직한 시스템에 불만을 표할 수는 없지 않은가. 노동의 가치가 조금 더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늘 한구석에 있지만 말이다.




아이들이 자라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는 식탁이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 되는 날도 올 거다. 그러면 난 그게 낯설어, 이제 그래도 되지 않는데도 어느 도서관이나 조용한 커피숍을 전전할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만들어 내던 작은 소음들이 그리워, 나의 작은 동료들이 그리워, 이제는 온전히 차지할 수 있는 이곳을 외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가 되면 나만의 책상이 딸린 나만의 서재를 갖게 될지 모른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나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나는 반쯤은 허무하고 떨떠름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거다. 허나 그 시간은 그려볼 수도 없을 만큼 요원하기에 우선은 나에게 주어진 이 식탁에서 오늘도 글을 쓰고 번역을 하련다. 재잘거리는 작은 동료들과 함께 북적이는 이 공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