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역서가 나온 날을 기억한다.
당시에 살던 동네에서 제일 가까운 청량리 영풍문고에서 그 책을 발견했다. 번역한 책이 출간되기를 기다리며 네이버 검색 창에 계속해서 책 제목을 쳐보던 시절이었다. 에이전시로부터 출간 소식을 듣고 갔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서점에서 처음 그 책을 보았을 때 나는 번역가가 되고 싶었던 욕망을 충족시키고도 차고 넘칠 만큼 호사로운 기분을 누렸다. 정확히 말하면 내 책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표지에 찍힌 내 이름과 경력만 보였던 당시의 나에게는 그 책이 내 얼굴처럼 느껴졌다. 내 눈과 코와 입이 모두가 볼 수 있는 그곳에 전시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 느낌을 못 잊어 아직도 번역을 하고 있다.
당시 내 옆에는 그 순수한 기쁨을 함께 나눌 엄마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이지 싶다. 엄마 역시 나 만큼이나 환하게 웃고 있었으므로.
나에게는 내가 번역한 책의 오타를 손수 적어 건네주는 아빠도 있다. 늙어가는 딸의 뒤늦은 자아실현을 묵묵히 응원하는 아빠의 마음이리라.
부모님의 이런 마음 덕분에 아무리 힘든 길일지라도 계속해서 나아갈 힘을 얻는다. 그러면서 한편 뒤돌아본다. 나는 부모님의 힘겨운 길을 얼마나 응원해주었을까. 자식은 그 존재만으로도 힘이 된다는 걸 직접 키워보니 알겠지만 분명 그 이상의 몫을 해낼 수 있었을 텐데, 함께 있을 때 충분히 그럴 기회가 많았는데. 못난 딸은 머나먼 타국에 와서야 그걸 깨닫는다.
내가 삐뚤어지지 않고 남 탓하지 않고 꿋꿋이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라면 그건 모두 부모님 덕일 테다. 내 책이 출간되면 뉴욕에 있는 나보다 늘 먼저 받아보시는 부모님. 책장에 내 역서 코너를 별도로 마련했다며 사진을 보내온 엄마와 통화를 끊은 뒤 다시 힘을 내보자고, 저 책장을 한 번 꽉 채워보자고 다짐한다.
누군가의 응원을 업고 하는 일이 이리 힘이 되는 일임을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고 나서야, 내가 한참을 아래로 내려가고 나서야 깨닫는 부족한 나이다.
이 세상에는 알려진 작가 배우, 가수, 번역가보다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 훨씬 많다. 모 꼭 알려져야만 하나, 유명해져야만 하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 일만 묵묵히 하는 사람일지언정 어느 정도의 알려짐과 인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 둘이 결여될 경우 그로 인한 가난은 무명이라는 악순환으로 우리를 다시 몰아넣는다.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지만 사실 나는 내가 번역한 책을 비판하는 글이나 조금만 맘 상하는 글만 봐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이런 나는 유명해지는 게 체질에 안 맞는 건가.
현재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번역가가 활동하고 있지만 실력은 천차만별일 거다. 그 안에서 나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중간은 갈까? 잘 나가는 번역가들이 번역하고 있는 역서를 나는 평생 맡아볼 기회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프로가 아닐까? 한 때는 그런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이 세상에는 텍스트의 깊이가 어마 무시한 책들도 너무 많고 유명한 저자와 그들의 책을 번역하는 번역가도 많다. 게다가 번역 이외의 직업을 갖고 있는 능력자도 꽤나 된다. 그 가운데 내가 설 곳은 과연 어디일까? 그들이 맡은 책에 비하면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이 초라해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뭐 한글로 된 책 역시 꼭 유명한 저자의 책만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므로 나 또한 평범한(?) 사람들의 책을 번역하는 번역가가 될 수는 있지 않을까? 그들의 목소리를 더 잘 전하는 사람이 될 수는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평범한 사람이므로. 그렇게 나에게 집중하니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성장이란 남과의 경쟁이 아니라 나와의 대화이다.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남겨두라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택했다. 이 일을 지키기 위해 나는 꾸준히 뭔가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저자의 글을 한국 독자들에게 알리는 일을 해보고도 싶다. 그렇게 번역가 이지민으로서 나만의 길을 내는 것, 앞으로 내 앞에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다행히 나에게는 이미 쓰인 글이 있다. 그 텍스트의 무게감 앞에 겁에 질릴 때도 있지만 백지 앞의 막막함보다는 낫다. 나에게는 함께 갈 동료(저자)가 있다. 그 묵직한 텍스트가 나에게 주는 위로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감사한 요즘이다.
버티는 게 아니라 여전한 마음으로 계속해 보고 싶다. 나와 결이 맞는 책들을 만날 때까지 텍스트의 힘을 믿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삶. 내가 기댈 곳이 있다면 그뿐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