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면 된 거 아닌가

by 물고기자리

10년쯤 하니 일이 끊기지는 않는다. 무슨 말인고 하니, 단가가 낮아서 그렇지 일은 얼마든지 들어온다는 얘기다. 일이 들어온다고 마냥 좋아할 수는 없는 게 나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먹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내가 이 정도 단가에 일해야 하나, 내가 이 텍스트를 얼마나 좋아하는가를 저울질한 끝에 일을 맡을지, 그냥 쉬는 편이 나을지 결정한다.


지금 번역하고 있는 책도 그런 저울질 끝에 맡게 된 책인데 샘플 번역을 할 때만 해도 이렇게나 묘사가 많은지 몰랐다. 샘플 번역을 할 때 책 한 권을 다 읽어볼 수는 없다. 대충 훑어보고 하고 싶은지 결정하거나 직접 번역하는 과정에서 음, 나와는 안 맞군 하고 포기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정말이지 하고 싶었다. 묘사가 가득 담긴 문장을 나도 한 번 맛깔나게 번역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번역에 들어가자 묘사의 수준이 몇 배나 깊어져 버렸다. 샘플 번역 부분은 평범한 축에 속했던 거였다. 내가 이 책을 잘 끌고 갈 수 있을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일단 맡은 책이니 최선을 다해야 한다. 번역료를 생각하면 앞날이, 많은 에너지가 들어갈 시간들이 못내 아쉽지만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번역료 생각은, 본전 생각은 싹 잊는다. 이런 책 앞에서는 내 이름을 달고 나오는 책이라는 사명감으로 임해야 한다.


잠시 멍한 상태로 있다가는 끔찍한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사실 실수는 어렵지 않은 책에서 오히려 저지르기 쉽다. '사산아'를 '사생아'로 번역한 적이 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저지른 실수였다. 재교를 봤으면 잡아냈을 테지만 출판사에서도 이렇다 할 수정 요청이 없었고 그렇게 나의 실수는 출판사도 편집자도 잡아내지 못한 채 책 한 권에 담겨 세상에 공개되고 말았다.


인터넷 서점에 달린 글을 보지 못했다면 아마 평생 몰랐을 수도 있었다. 그 글을 본 순간의 낯 뜨거운 경험은 차마 말로 쏟아내기도 버겁다. 출판사에서 더 이상 연락이 없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 후로 바짝 긴장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번역을 하지 못할 만큼 중압감에 시달린 건 아니다. 사람이니 실수할 수도 있는 거고 피곤한 상태로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손이 익숙한 단어를 내뱉을 수도 있다. 다만 그 후에는 반드시 컨디션이 좋을 때 마지막으로 꼼꼼히 검토하는 과정을 거친다.


보통 늦어도 마감일보다 며칠 전에 작업을 완료하는 편이다. 아이들이 아플 수도, 아이들 때문에 내가 아플 수도, 아이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갑자기 놀고 싶어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을 하는 데 있어 아이들은 분명 걸리적거리는 존재다. 그런데 마지못해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번역에서 잠시 거리를 두다가 돌아오면 안 풀리던 문장이 풀릴 때가 있다.


김남주 번역가는 <사라지는 번역가들>에서 "품고 있는 침묵의 저변이 아주 넓은, 그 깊이가 아주 깊은 문장"을 만나는 순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럴 때면 그저 가만히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다. 때로는 소리 내어 읽기도 한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들여다본다. 그러다 보면 온다, 그 순간이. 길을 걷다가 밥을 먹다가 샤워를 하다가 80분의 요가를 마치고 온몸의 긴장을 풀고 시체처럼 누운 사바사나의 시간에 홀연히 내려앉는다. 그 침묵의 의미가, 아니 침묵까지 포괄하는 그 문장의 의미가.


아이들에게 억지로 끌려가 못마땅한 얼굴로 앉아 있지만 나는 안다. 아이들과 보내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시간이 번역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걸.


번역은 쓰고 지우고 고쳐 쓰고 단어를 바꾸고 문장을 자르고 문장의 순서를 바꾸는 일의 무한반복이다. 글쓰기가 그런 것처럼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이면 나아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과정을 마음에 들 때까지 반복한다. 나는 초고보다 수정에 시간을 많이 들이는 편이라 이 과정이 힘들기는 하지만 구겨진 종이가 펴지듯 글이 스르륵 기지개를 켜는 것을 보면 언제고 뿌듯하다.


번역을 완료했다 싶은 시점에는 거리를 두는 시간을 갖는다. 국을 끓일 때 처음 맛이랑 뭉근하게 끓고 난 뒤 맛이 다르듯 문장도 시간을 두고 바라보면 다르게 다가온다. 어색한 조합처럼 느껴졌던 문장도 다시 보니 괜찮은 듯하고 반면 괜찮다고 생각했던 문장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어색하게 다가온다.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이 단계에서는 최대한 독자의 시선으로 내 번역문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번역은 그 책을 가장 자세히 읽는 방법이다. 나보다 더 꼼꼼히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없을 테고 저자 말고 나보다 이 책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도 없다.


그거면 된 거 아닌가. 한 권의 책을 마치면 늘 그렇듯 전보다는 나은 내가 되어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