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고기자리 Nov 28. 2020

노력이 드는 일

지난 주에 마감을 끝낸 책이 자꾸 나를 따라다닌다.


그린란드 탐사를 기록한, 야생을 향한 한 편의 시이자 러브레터였다. 그러한 책을 번역할 기회에 감사했지만 에이전시에서 맡긴 거라(번역료의 40퍼센트를 가져간다는!) 막판까지 갈팡질팡했던 나의 모습이 못내 못마땅했던가 보다.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해서 문장을 가다듬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책을 에이전시가 아닌 출판사에서 곧장 의뢰받았다면 더 많은 공을 들였을까 하는 솔직한 질문 앞에 나를 끌어다 앉히면 여전히 고개가 설레설레 저어진다.


마감에 맞춰 보냈으니 할 만큼 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분명 더 많은 마음을 줄 수 있는 지점이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까지는 어찌할 수가 없다.

 



<읽기로서의 번역>이라는 책을 읽는 동안 그런 생각은 더욱 증폭되어 불안감으로 번지고 만다. 이 책은 일본 번역가가 쓴 책이라 큰 도움이 될까 싶어 사기를 미루고 있다가 드디어 구매한 것인데 읽다 보니 진작에 살 걸 하는 후회가 찾아온다.


번역 작업의 9할이 읽는 거라는 들어가는 말에 초반부터 뜨끔해진다. 후다닥 읽고 허겁지겁 옮기는 데 급급했던 내 모습을 뒤돌아보니 낯이 뜨거워진다.


"요철을 지나치게 다듬지 않는다."는 말 앞에서 지난주에 넘겼던 원고를 머릿속으로 굴려본다.


절반을 읽다가 결국 책장을 덮는다. 나의 번역문을 질책하는 것 같아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지식의 습득은 늘 기꺼우나 지금은 아닌 듯하다.


이미 배는 떠났으니 일단은 머리를 좀 쉬게 하는 편이 옳을 것 같다.


그리하여 줌파 라히리의 <내가 있는 곳>을 집어 든다. 그녀의 흐르는 듯하지만 멈춰서 생각을 강요하는 문장을 읽으며 내가 옮겼던 문장이 누군가에게 그렇게 가 닿는 순간을 생각해 본다. 너무 매끄럽게 번역하지 않았기를, 내 목소리로 해석하지 않았기를 바라본다. 식히려던 머리는 어느새 또다시 번역문을 향해 있다.


번역하는 내내, 문학적인 표현은 어설픈 위치의 번역가에게는 허용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유명한 번역가는 자신의 번역문 앞에 고집스러운 태도를 내보여도 인정을 받지만 나 또한 그리할 수 있을까, 그런 고집을 내보일 수 있을까. 나의 의중 따위는 관심 없는 편집자가 나의 번역문에 거침없이 손을 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난밤 혼자 책을 읽는 시간이 좋았다. 미뤄뒀던 소설들을 하나씩 읽어가며 마음을 마음껏 풀어헤치는 시간. 긴장되었던 마음이 쑥 내려앉는 게 좋아 졸린 눈을 비비며 끝까지 읽었더랬다.


아침에 일어나니 대학교재를 출간하는 출판사에서 메일이 와 있었다. 이틀 째 고민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거절의 답을 보내게 될 것 같다. 나의 길을 내는 일에 소홀하지 말자고 어젯밤 읽은 소설이 말해주지 않았던가. 내가 좋아하는 이들의 글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내 일을 하는 데뿐만 아니라 어떻게 일할 것인가를 고심하는 데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어쩜 더 중요한 건 후자일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예쁘장한 역서의 나만 아는 이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