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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Jan 08. 2021

엄마이기 전에 인간 아무개

2015년 10월 16일. 내 몸에서 나온 작은 몸뚱이가 나와 분리되는 순간 내 삶의 풍경이 바뀌었다. 내가 알던 세상은 더 이상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기는 했으나 안정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프리랜서 일을 시작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기에 수입도 일의 수급도 불안했다. 그 가운데 또 다른 불안 덩어리인 아이까지 얹혔진 것이었다.  


주위에 도움을 요청할 가족이 없는 상황에서 시설에 아이를 맡기지 않는 한, 아이를 끼고 일을 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유난히 엄마에게 집착하는 첫째 아이는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기만 해도 진이 빠지는 예민한 아이였다. 잠시만이라도 아이를 어딘가에 맡기고 싶었으나 물가 비싼 뉴욕에서 시설에 맡기거나 도와줄 사람을 쓰는 것은 우리의 예산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2년 반이 지난 2018년 6월 21일.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두 아이는 저마다 귀여움을 무기로 경쟁하듯 나를 기쁘게 해 주었으나 내가 일을 할라치면 요 순수한 존재들이 악마로 돌변했다. TV를 틀어주고 간식을 쥐어주고 장난감을 쥐어주며 조각 시간을 모으고 모아 일을 했다. 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나는 단 5분이라도 아니 단 1분이라도 주워 담으려 했다. 


왜 그렇게 악착같이 일을 했냐고 묻는다면 좋아서 한 일이라고 밖에는 대답하지 못하겠다. 내가 삶에서 두 번째로 찾은 내 일이었기에, 게다가 갈수록 좋아지고 있는 일이었기에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돌아보면 나는 두 아이와도 사랑에 빠졌지만 내가 하는 일과도 막 사랑에 빠진 상태였다. 무엇이든 첫 감정이 가장 달뜨지 않는가. 그 사랑에 불을 지피기 위해 더 많은 사랑을 퍼주고 싶었고 그건 모든 관계가 그렇듯 시간을 요하는 일이었다. 


나의 삶은 계속되어야 했다. 아이가 태어나 나의 세계를 잠식할지라도 아이를 낳기 전의 나를 한 조각이라도 움켜쥐고 있어야 했다. 나는 나의 사랑을 갈구하는 두 대상이 평화롭게 공존하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아이를 돌보며 내 일을 하는 바쁜 일정으로 하루를 채워나갔다. 나는 외출도 자주 하지 않았는데 사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나의 하루는 육아와 내 일, 집안일로만 빼곡히 채워졌다. 


돈을 벌기 위해서도 일을 했지만 그 돈은 사실 일을 안 하고 쉬는 게 나은 선택일 만큼 적었기에 단순히 돈 때문에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계속 일하면서 나의 몸값을 높이려는 욕심도 있었다. 경력이 쌓이고 실력이 향상되면 몸값이 오를 테고 그러려면 착실히 하루를 쌓아 올릴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에게는 “자기만의 일”이 필요했다. 돈이 되던, 돈이 되지 않던, 나의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 나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고 나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일.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일. 엄마가 되는 일과 별개의 일. 인간 아무개로서의 나를 지키는 일. 나에게는 그런 일이 절실했다.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기는 말의 중간지대에 서 있는 동안,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아닌 번역가로서 기능할 수 있었다. 내 이름을 달고 나오는 역서가 존재하는 한, 인간 아무개로 살 수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삶의 한가운데로 나를 쏘아 올릴 수 있었다. 


고비가 여러 번 찾아왔지만 일이 없어서 하지 못할 때가 아닌 한 내가 먼저 일을 놓은 적은 없었다. 기다리다 보면 결국 일은 들어왔지만 일이 없는 시기가 몇 달째 이어질 때면 어김없이 초조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나는 마음 편히 쉬거나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종종 무력감을 느꼈다. 나에게 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였다. 


그렇다고 내가 아이들에게 마음을 덜 쓴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아이들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나는 아이들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애쓰는 평범한 엄마였다. 아무리 내 일을 사랑한다지만 엄마인 나를 부인하면서까지 내 일에 파묻히고 싶지는 않았다. 세상의 모든 엄마가 그렇듯 자기 합리화를 곁들여 가며 엄마로서의 나와 또 다른 나를 기꺼이 껴안고 갔을 뿐이었다.   


일하는 내가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다. 아이가 아플 때나 그냥 쉬고 싶을 때면 돈도 안 되는 이걸 붙들고 있는 내가 못마땅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를 보호한다고 했던가. 그럴 때마다 나를 살리는 건 아이들이었다. 힘들다 투정 부리는 하루일지언정 일하다가도 언제든 아이들의 볼에 얼굴을 비벼볼 수 있고 뜨끈한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일상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장난기 가득한 눈이 말해주곤 했다. 


때로는 그 순간이 너무 애틋해 아무것도 안 하고 아이들과 마냥 하루를 보내고 싶기도 했다. 하루 종일 그 달달한 웃음만 보고 있어도 배부를 것만 같았다. 놀아달라는 아이를 외면하고 일을 할 때면 누구 좋자고 이 일을 하는 건가 하는 마음도 들었다. 아이가 나를 원할 때, 아직 어릴 때 함께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갖는 게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다. 아이의 지금은 딱 한 번뿐인데 그 시간에 함께 해주는 게 진짜 엄마가 아닐까 하는 마음이 수시로 나를 찔러댔다.


하지만 나에게도 지금은 딱 한번뿐이었다. 영영 오지 않을 언젠가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내가 원할 때 나에게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돈이 되던, 되지 않던 아이가 잠든 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킨 건 내 일을 포기할 수 없는 그 마음 때문이었다. 그 마음을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일이 있다. 아이를 낳은 건 분명 내가 겪은 가장 큰 변화이자 경험이었지만 그 구간을 통과했다고 나를 지키는 일마저 놓고 싶지는 않다.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꼭 말해줘야지. 일을 한다는 게 엄마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전까지는 아이가 섭섭하지 않도록 나에게 있는 사랑을 과할 정도로 표현해 줘야 할 거다. 조금 섭섭한 기억은 자라나느라 바쁜 아이가 잊어주기를. 사실 아이는 알고 있다. 엄마가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엄마는 늘 그 사랑에 조종당한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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