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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Feb 13. 2021

외할머니의 부고

아침에 일어나니 엄마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외할머니는 나에게 다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시대의 많은 여성처럼 아들 선호 사상이 뿌리 깊었던 분인지라 우리가 갈 때마다 당신의 딸인 엄마에게 언니와 나뿐이라 어쩌냐며 듣기 싫은 얘기를 하곤 하셨다. 언니가 사법고시에 패스하고 검사가 되면서 모든 걱정은 나를 향했지만 결혼하고 미국에 오면서 그나마도 찾아뵐 수 없게 되자 그 모든 서러움은 과거의 추억이 되었다.


큰 병 없이 아흔여덟까지 사셨으니, 편안하게 주무시다 돌아가셨다니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세상에 다행인 죽음이란 게 있긴 할까. 며칠 전 외할머니를 뵙고 온 엄마는 한 번 더 안아드리지 못한 걸 슬퍼하고 있었다.


이제 나에게는 조부모가 없다. 한 분 있으신 친가 쪽 새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몇 년 후부터 가족들과의 인연을 끊었다. 그분 역시 사탕을 향해 뻗는 어린아이의 손을 탁 질 정도로 매정한 분이셨지만 막내 고모와는 그래도 꽤 오래 함께 살았는데 어찌 그리할 수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원래 조부모의 사랑을 잘 모르고 컸기에 할머니의 죽음에 친가족처럼 슬퍼하는 감정이 일지는 않는다. 아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순히 가족의 죽음이라기보다는 뭔가 더 큰 감정이 나를 죄어온다. 나에게는 할머니이지만 사실 두 분 모두 각자의 인생을 살아온 한 명의 인간이자 여자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들이 나에게 준 서러운 기억은 가벼워지고 만다. 다정했던 할머니에 대한 추억은 없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추억할 수 있다. 그렇게 나만의 방식으로 할머니를 추억하며 화면 너머의 엄마를 바라본다. 내가 엄마의 자리에 있게 되는 날이 제발 빨리 오지 않기를 바라며. 엄마가 아무리 오래 살아도 더 오래 살기를 바라는 딸의 마음으로.


외할머니 댁에 가면 늘 핀잔을 듣곤 했지만 외할머니 댁에서만 먹을 수 있는 빈대떡과 할머니가 스끼야끼라 부르던 불고기 전골은 늘 나를 설레게 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꽤나 강하게 각인된 그 달달한 불고기는 돌아보면 나와 할머니를 이어주던 실타래였다. 아무리 딸이라고 구박해도 먹을 때만큼은 넉넉하셨던 할머니.


늘 불만을 읊조리며 살았던 할머니. 그래서 큰 이모를 미국으로 달아나게 만들었던 할머니. 그리하여 엄마가 유일한 여자 형제와 생이별하게 만든 할머니. 아들 선호 사상으로 한 남자의 인생을 파멸에 이르게 한 할머니. 그녀가 뿌린 흔적들은 이렇게 각자의 땅에서 살아가는데 그 우주의 중심에 있던 큰 별은 졌다.


부디 할머니가 그렇게 좋아하시는 큰삼촌과 작은 삼촌 곁에서 이제 편안하게 눈 감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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