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고기자리 Jan 30. 2021

몸이 원하는 만큼 잘 뿐이라고

아이가 초저녁부터 잠만 잔다. 

학교에서 코로나 확진자와 접촉한 것으로 밝혀져 오늘 아침 학교에 가자마자 도로 돌려보내진 아이. 영하 8도의 날씨에 거의 한 시간 동안 밖에 있었으니 탈이 날 만도 하다. 코로나 증상이 아닐까 걱정이 되지만 아직 열은 없다. 저녁을 먹으러 잠깐 일어났다가 다시 곧바로 눈을 감는 아이를 보니 아무래도 몸이 잠을 원하는 듯하다.


누군가 너는 무슨 행위를 가장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잠자는 것이라고 말하겠다.

나는 잠을 자기 위해 눕는 순간을 가장 좋아하고 아침에 잠에서 깨야 할 때를 가장 싫어한다. 이런 나의 기질을 한 때는 떳떳하게 밝히지 못했다. 잠자는 걸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속에서 잠자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나의 모습은 왠지 바람직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서점가를 장식하는 책들의 표지에 널브러져 있는 피사체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나의 잠 많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조금은 당당하게 내가 잠이 많다는 걸 밝히기 시작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나의 잠 많음을 게으름이나 나태와 함께 묶고 싶지는 않다. 나는 누구보다도 부지런한 사람인 데다 내가 잠을 많이 자는 이유는 낮 시간을 활기차게 보내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성실히 살기 위해 나는 내 몸이 원하는 수면 시간을 지킬 뿐이다.


내가 건축가라는 직업을 포기한 데에는 밤샘 작업이 많은 일이라는 점 역시 큰 몫을 했다. 평소에 열심히 일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들은 꼭 마감 며칠 전부터 내리 밤을 새우곤 한다. 학부 때 딱 한 번 밤을 새 본 나는 당시에 느꼈던 공포에 가까운 느낌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 혼자 일하기로 결심한 것도 나 스스로 나의 수면 시간을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흔히 잠을 자는 시간은 낭비하는 시간,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한 채 흘려버리는 시간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나는 잠을 자면서 몸이 충전되는 느낌, 그리고 무엇보다도 달콤한 잠 자체를 정말 좋아한다. 나는 정말이지 모두가 조금 더 자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12시간도 좋고 14시간도 좋으니 아이가 몸이 원하는 만큼 푹 자고 부디 컨디션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코로나 증상이 아니기를, 제 어미를 닮아 단지 잠이 많은 것이기를, 옆에서 자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feat. 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