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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Jan 27. 2021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feat. 눈)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 날이 차다. 

눈이 오면 무조건 포근한 것도 아닌가 보다. 바닥에 닿자마자 녹아 사라질 거면서 눈송이는 줄기차게 내 옷 위로 내려앉는다.  


아이가 아니었더라면 이 추운 날 나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을 거다. 아이가 없었더라면 눈바람을 맞으며 20분 동안 걷는 일도, 겨울의 공기를 콧구멍으로 욱여넣는 일도, 그렇게 길을 걷는 동안 누군가 떨어뜨리고 간 장갑 한쪽을 마주하는 일도 없었을 거다. 저 알록달록한 장갑의 주인인 어린 소녀는 없어진 장갑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을까. 그런 장면을 상상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아이의 학교 앞이다. 


백인 부모과 흑인 유모들 틈에 섞여 눈보라를 맞으며 아이를 기다린다. 1시 50분이 되자 학교 문이 열리고 아이가 나온다. 나를 보며 손을 흔드는 아이. 맡겨둔 물건마냥 부모들은 저마다 내 아이를 받아 들고 발걸음을 돌린다.


왔던 길을 정확히 다시 밟아 돌아가는 길. 둘이 되어 돌아가는 길은 뭐든 느리다. 하루의 에너지를 쓰고 온 아이의 피로한 다리는 자주 주저앉고, 구멍가게에 들려 아이스크림을 고르느라 또 멈춰 선다. 절반쯤 왔나, 나도 허리가 아프다. 딱 이 위치쯤에 집이 있었으면 싶은 마음이 저도 같았는지 아이는 엎어달라고 투정을 부린다.


아이가 아픈 다리를 신경 쓰지 않도록 자꾸만 다른 얘기를 건네는 것도 나에게 주어진 몫. 오늘은 할머니가 보내준다는 택배 이야기를 보따리장수처럼 하나씩 꺼내 보인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물건을 미끼마냥 툭, 던지며 시치미를 뚝 뗀 채 재촉하는 걸음. 아이는 제 선물 이야기에 금세 눈을 반짝인다. 언제 오냐는 재촉으로 들들 볶이기는 했으나 덕분에 나머지 시간 동안 아이의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연속으로 횡단보도가 세 개 놓인 구간만 건너면 집이다. 아무래도 오늘도 자전거 타기는 글렀다. 이 추운 날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를 보며 새삼 아이와의 온도 차이를 느낀다. 이런 날이면 따뜻한 차나 커피를 찾게 되는 나의 늙은 몸뚱이와는 달리 아이의 젊은 심장은 너무 뜨거운가 보다. 


집에 들어와 따뜻한 커피로 몸을 녹이며 다시 노트북 앞에 앉는다. 그나저나 엄마가 보내준다는 택배는 이번에는 얼마나 걸려야 도착할까. 그 안에 들어있을 온갖 것을 생각하며 나 또한 어느새 아이처럼 설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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