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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Feb 01. 2021

얼마나 벌어야 우리는

집을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스트리트이지(StreetEasy)나 질로(Zillow) 같은 부동산 거래 사이트에 들어가 우리 동네에 새로 나온 집이 없나 수시로 찾아본다. 당장 집을 사지 못해도 괜찮다.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물론 마음에 드는 집이 나올 확률 혹은 그 집이 우리 예산 안에 들어올 확률은 지극히 낮다. 그래도 그런 집을 보고 있으면 언젠가 마련할 우리 집이라는 현실이 한 뼘 가까워진 것만 같아 괜히 설렌다.


뉴욕의 집들은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천편일률적이기는 하지만 살기에는 편리한 한국의 아파트 평면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미국의 집은 처음에 충격 그 자체였다. 이렇게 형편없는 평면은, 이렇게 비효율적인 평면은 처음 봤다면 처음에는 비판도 엄청 했다. 길쭉한 평면 끝에 자리한 부엌을 볼 때면 이건 식모살이야 뭐야 하며 어이없어했고 아무리 큰 집이라도 욕실이 하나뿐인 집을 볼 때면 아무리 작은 집에도 욕실을 두 개를 빼는 한국 아파트를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결국 지금 내가 보는 집들은 리노베이션을 해서 평면을 완전히 바꾸었거나 아예 신축 건물 안에 자리한 집들이다. 세탁기가 집에 있고 난방과 냉방도 최신 시설로 깔린 집. 미국의 평범한 집들은 난방은 라디에이터로 돌아가고 냉방은 여름이 올 때마다 외벽에 부착해야 하는 에어컨으로 돌아간다. 정말이지 번거로운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시끄럽기는 또 왜 그리 시끄러운지. 현재 우리 집은 난방이 건물 전체적으로 온오프 되는 시스템이라 정말 추운 날에도 난방이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 집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문제는 나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는 집들은 전부 너무 비싸다는 사실이다. 프리랜서 월급만으로 집을 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나에게는 남편이 있지만 남편 월급으로 나오는 모기지로는 우리가 원하는 집을 살 수 없을 거다. 자기 연민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나를 붙들어가며 예산 목록 점검해 봐도 뾰족한 수가 없다. 부지런히 더 버는 수밖에. 햇살 좋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은 바람을 담아 또 번역을 하는 수밖에.


새로운 집에 이사 오기 직전 TV를 끊었다. 하루 중 보는 시간이 얼마 되지도 않는 TV에 100불이 넘는 비용을 지출하는 건 아무래도 합리적이지 않은 일 같았다. TV를 끊으니 세상과 더욱 단절된 것 같았지만, 미국 안의 한국이라는 우리 집의 속성이 더욱 강화된 것만 같아 꺼림칙했지만 일단은 절약하고 봐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물가 비싼 뉴욕에서 가족 단위로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한 달 지출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항목은 렌트비다. 신랑 연봉의 절반에 가까운 돈이 렌트비로 나간다. 거기에 천 불에 가까운 보험비는 또 어떻고. 그 둘을 빼면 생활비는 늘 마이너스다. 기본적인 식비와 핸드폰, 인터넷, 가스, 전기 따위의 유틸리티는 줄이려 해도 줄일 수가 없다. 아이들이 원하는 먹거리를 포기하기엔 너무 속이 상하고 예쁜 옷이나 장난감을 보면 사주고픈 엄마의 마음도 어찌할 수 없다.  


차 없어도 잘만 다니던 우리 가족이 작년 여름 이사를 하면서 중고차를 구입한 건 전적으로 코로나 때문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차마 지하철을 탈 수 없었다. 결국 중고차 할부 비용과 보험비가 추가되면서 이사하기 전보다 지출이 더 많아지고 말았다.


내가 일을 놓을 수 없는 건 결국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크다. 마이너스 생활을 막으려면 내가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 저축이라는 행위를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이 무시무시한 생활을 어떻게든 이어 나가려면, 조금이라도 저축이라는 것을 해보려면. 내가 얼마를 벌면 신랑이 얼마를 벌면 우리의 생활에 조금의 여유가 찾아올지 궁금한 날도 있다. 이제 곧 아이들의 사교육비에 돈을 지출하게 되는 날도 찾아올 텐데 우리가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프리랜서란 말은 겉보기엔 자유롭지만 돈이 없다면 그 자유는 끔찍하다. 번역만 해서는 떼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뒤늦게나마 다른 일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흔들리는 날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다른 일이라는 것들은 돈이 더 안 되는 일이다. 가령 가구 디자인을 하고 직접 만드는 일까지, 나는 내 손으로 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지금 당장 시작해서 그걸로 돈을 벌기까지 또 얼마나 지난한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하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나을 거다. 취미로 하면 모를까(그런데 취미도 돈이 든다).


뉴욕에 사는 것을, 해외에 사는 것을 부러워하는 사람을 종종 만나면 두 손 잡고 말해주고 싶다. 현실은 생각보다 안락하지 않다고. 한두 달 살다 가는 거라면 모를까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은 렌트비 때문에 허리가 휘어질 지경이다. 비싸지만 시설 구린 호텔에 살고 있는 기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한국처럼 상가나 편의점 같은 것도 없고 한국의 90년대 슈퍼 같은 모습의 마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런데도 집값이 이리도 비싼 점이 나는 정말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렌트비를 벌기 위해 신랑도 나도 돌아가지 않는 목과 어깨를 부여잡고 일을 한다. 언젠가는 둘의 벌이에 만족하는 날이 올 거라 믿으며. 그 돈으로 우리 네 가족이 부족함 없이 먹고 자고 입고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가끔은 내가 정말 돈이 많아도 번역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우선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므로 돈이라는 변수가 사라지고 나면 다 떼려 치우고 싶지 않을까? 꼴도 보기 싫다며 이제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게 될까? 신랑에게도 물어봤는데 역시나 내 생각과 비슷한 답이 돌아왔다. 지금 하는 일을 하되, 하고 싶은 쪽으로 하겠다는 것. 그러니까 돈이 많아 번역을 해야 할 필요가 없는 날이 오더라도 난 번역을 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보다 일의 양을 줄이고 돈보다는 나와의 궁합을 먼저 생각해 번역이라는 일을 하고 싶다.


올해에는 부디 경제적인 벌이가 조금 나아져 나를 성장시키는 번역을 더 많이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엄마가 신문에서 본 사주에 따르면 올해 신랑과 나의 운수가 참으로 좋다 하니 믿어보기로 한다. 예전에 본 사주에서도 나는 마흔 전까지는 별 볼일 없다고 했다. 올해로 마흔이 되니 이제부터 피려나, 사주 따위 하면서도 은근히 기대가 되는 건 사람이라 어쩔 수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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