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고기자리 Mar 17. 2021

여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리베카 솔닛은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의 서문을 열면서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강연했던 경험을 전한다. 청중 가운데 많은 사람이 울프가 아이를 낳아야 했을까 하는 질문에 가장 흥미를 보였다고. 솔닛은 “우리가 울프의 출산 상태를 추궁하는 건 그의 작품이 제기하는 멋진 질문으로부터 벗어나는 따분하고 무의미한 짓이라고” 말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여성의 자궁에만 관심을 보이는 사회의 “닫힌 질문”에 “열린 질문”으로 답하고자 한다. 


여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출산은 여성의 본분이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여성이 살아생전 자궁이라는 신체 기관, 여성에게만 주어진 이 기관을 이용하지 않음에 죄책감 비슷한 감정을 가진다. 그리하여 무수히 많은 여성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무의식 중에 임신을 하고 엄마가 된다. 하지만 무의식 중에 저지른(?) 일 치고 여성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지나치게 가혹하다.


《이등 시민》에 실린 린다 쇼어의 <나의 죽음>에는 죽고 나서도 챙길 일이 너무 많은 엄마가 등장한다. “있잖아, 루스. 나 죽었다. 나 대신 학교에서 우리 애들 좀 챙겨서 데이브가 데리러 올 때까지만 맡아줄 수 있어?” 그러면서 “남편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지 않도록 앞으로 먹을 음식을 4일 치 준비”한다. “차가운 것으로 잘 포장하고, 어떻게 데워야 하는지 몇 인분인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까지 써둔 채. 맘 편히 죽을 수도 없는 불쌍한 엄마여.


나도 아이를 둘이나 낳았다. 아이를 낳겠다고 결정했을 해도 100퍼센트 나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순전히 나의 의지로 철저한 계획 하에 모든 것을 진행했다는 뿌듯함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틀렸다. 결과적으로 나는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고 감정에 모든 것을 맡긴 셈이었다.  


나의 계획은 이랬다. 언젠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생각이었던 나는 주위의 워킹맘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아플 때마다 눈치를 보며 휴가를 쓰고 아침에 종종걸음을 치며 간신히 출근 시간에 맞춰 들어오는 그들의 모습은 안쓰럽다 못해 속이 상할 정도였다. 아이를 낳기 직전까지 회사에 출근하는 모습은 말해 뭐하랴. 그래서 나는 프리랜서가 되기로 했다. 차근히 준비를 해두면 훗날 내 일과 아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자부했다. 


단단한 착각이었다. 아이들이 종이인형처럼 내 옆에 납작하게 누워 있기만 했다면, 내 일이 잘 풀려 승승장구했다면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기만의 의지가 철철 넘치는 작은 인간이었고 내 일은 프리랜서가 그렇듯 불안함의 연속이었다. 일을 하면서도 아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고 내 일을 하지 못할 때면 아이들을 미워하기도 했다. 리베카 솔닛을 향하던 닫힌 질문의 화살은 나 자신에게도 향해 있었다. 내 일을 한다고 아이들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나의 모습은 이상적인 엄마에 가까운가. 불편한 질문을 방석처럼 깔고 일했다.


집에 돌아왔는데 엄마가 없던 적이 거의 없을 만큼 따뜻한 유년을 보냈기에 그게 저절로 되는 일인 줄 알았다. 있는 듯 없는 듯 편안하게 피부에 스며들었던 집안의 온도가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노동과 희생이 만들어낸 거였단 걸 주위의 일하는 엄마들을 보며 또 내가 일하는 엄마가 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의 어설픈 상상이 만들어낸 훈훈한 이미지가 처참하게 깨어지고 현실의 삶이 내가 내놓은 답안을 요리조리 피해 가기 시작하는 순간, 나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왜 엄마가 되기로 했는지, 열린 질문을 던질 만큼 깨어 있지 못한 상태에서 엄마가 되었던 건 아니었는지, 나는 언제까지 이 같은 질문 앞에서 우왕좌왕하게 될 것인지. 한 번 터진 질문은 걷잡을 수 없이 증식하며 나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엄마가 되기 전에 했어야 했던 질문을, 엄마가 되고 나서야 뒤늦게 던지기 시작했지만 그건 사실 엄마가 된 이후에야 제대로 답할 수 있는 질문임을 이제야 알 것 같다. 그 질문 속에 허우적댔던 지난 시간이 시간 낭비가 아니었다는 것도.



매거진의 이전글 장조림을 졸이며 한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