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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Jun 11. 2021

턱이 길어지는 기분이 들어

사진첩이 언제부턴가 아이들 사진으로만 빼곡하다. 아이들이 예뻐서 마구 찍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알던 얼굴이 아닌 나의 낯선 모습에 사진을 피했던 거다. 내 얼굴이 길어지고 있었다. 동안의 필요조건이 짧은 얼굴이라는데 이게 노화의 징조인가. 번역하고 애 보느라 내 얼굴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는 것도 몰랐단 말인가. 진심으로 슬펐다.


그때부터 호들갑을 떨며 콜라겐과 효소, 비타민 따위를 챙기기 시작했다. 건강과 긴 얼굴이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으나 우선 장 건강과 피부 건강을 챙겨야 할 것 같았다. 요새 들어 부쩍 피곤하다 싶었는데 그것도 긴 얼굴과 관련이 있으려나. 틈틈이 거울을 보며 그동안 무심했던 세월을 만회해보려고 하나 이미 마흔을 넘긴 몸은 그냥 받아들여하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20대의 나라고 특별한 체력을 자랑했던 건 아니다. 20대 때 나의 낮은 체력을 깨달은 극적인 계기는 신입사원 입사 후 있었던 오리엔테이션에서였다. 새벽에 일어나 구보를 하고 빨간 모자 교관의 지휘 하에 오리걸음을 걷는 동안 나는 이러다 다리가 떨어져 나갈 수 있음을, 호흡이 끊길 수도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때 나의 저질체력을 받쳐주기 위해 옆에서 같이 어깨동무하고 게걸음을 걷던 동기들은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신입사원 동기 중 내가 가장 어렸던 걸 감안하면 다들 나보다 늙은 몸뚱이로 살아가고 있을 텐데. 어디에서든 다들 건강한 몸으로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


얼굴이 길어지면서 내 입맛에도 변화가 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만둣국이다. 설날에 큰집에 가면 큰엄마가 떡만둣국을 주셨는데 나는 제발 내 그릇에는 만두가 들어있지 않기를 바랐다. 만두는 늘 터지기 마련이었는데 그러면 나는 뽀얀 국물이 흐려지는 것만 같아 어린 마음에 속이 상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김치만두를 넣어서 일부러 터뜨려 먹는다. 국물과 김치만두 속이 섞이면서 만들어내는 국물의 감칠맛은 찐만두로 먹을 때와는 또 다른 풍미를 선사한다. 그 밖에도 바뀐 입맛은 많다. 예전엔 무슨 맛으로 먹는지 알 수 없었던 묵밥이나 버섯은 이제 없어서 못 먹을 정도다.   


집에서 애도 보고 일도 하고 살림도 하는 엄마인 나는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늘 손이 적게 가는 메뉴를 선정하고 간편 조리가 가능한 음식을 H마트에서 사기도 하지만 김밥만큼은 내가 만다. 내가 정말 김밥을 잘 말아서가 아니라 이곳에서 파는 김밥은 정말 맛이 없기 때문이다. 김밥은 들어가는 재료의 맛이 8할을 한다고 봐도 되는데 뉴욕에서 파는 김밥들은 내 기준에서 뭔가가 부족하다. 아무래도 정성인가.


한국에 있을 때는 김밥천국에서 파는 참치 2를 가장 좋아했으나 미국에 온 이후로는 정통 김밥을 선호한다. 다만 소시지 대신에 어묵을 넣고 단무지와 우엉, 계란과 당근은 반드시 넣는다. 나머지 재료는 그때 그때 있는 걸로 대체하고 넣을 게 정 없을 때에는 땡초김밥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나만의 팁을 하나 누설하자면 김밥에 치폴레 마요네즈를 찍어 먹으면 정말 맛있다. 그냥 마요네즈와는 다른 매콤함이 김밥의 재료에 쏙쏙 스며들어 맛이 기가 막히다. 가뜩이나 열량 높은 김밥에 마요네즈까지 곁들이면 열량이 폭발할 테지만 김밥 먹을 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권여선의 <오늘은 뭐 먹지?>에는 김밥을 통째로 들고 먹는 얘기가 나온다. 읽을 때마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내친김에 펼쳐서 읽는 순간 “그 숙모가 김밥을 썰지 않고 그대로 담아와 둥글게 말린 김밥의 등이 시커멓게 번들거리고 있었다”라는 대목에서 당장 오늘 저녁은 김밥! 하고 외치고 만다. 첫 번째 자아가 재료도 없잖아, 단무지도 없잖아 말하지만 두 번째 자아가 밥에 간을 좀 세게 하면 되잖아, 있는 재료로 간단하게 말아 먹어 한다. 재료를 확인하다가 결정적으로 김이 없어서 김밥은 결국 말지 못한다. 김밥 김은 미리미리 사다 쟁여두는 걸로.


오늘 저녁은 깻잎을 튀겼다. 얼마 전 먹다 남은 깻잎을 보는 순간 한 번 튀겨봐 하는 호기심이 발동한 이후 생각날 때면 가끔씩 튀겨 먹는다. 아이들이 깻잎 향을 별로 안 좋아할 거 같아서 신랑과 나만 먹으려고 그리 많지 않은 양을 튀겼는데 아이들이 개 눈 감추듯 먹어치우는 바람에 신랑과 나는 자식새끼 입에 맛난 게 들어가는 걸 흐뭇해하는 마음 반 배고픈 마음 반으로 지켜보았다.


오늘은 넉넉히 튀겼으니 남겠지 했는데 식탁에 놓자마자 아이들의 손이 바빠진다. 마지막 두 개가 남았을 무렵 아이들 먹이려고 내버려 뒀더니만 욕심부리며 제 접시에 가져간 아이들이 배가 불렀는지 어이없게 마지막 튀김을 둘 다 남겨버린 채 식탁을 떠났다. 아이들이 떠난 식탁에 앉아 남은 깻잎 튀김을 힐끗 곁눈질해가며 글을 쓰다가 결국 집어 들고 말았다. 남은 튀김을. 식어서 아삭한 맛은 사라졌지만 맛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한 점을 먹고 나니 술이 생각났다. 역시 튀김의 느끼함을 씻어내려면 술이지. 술이 생각나니 지극히 자연스럽게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생각났다. 다 함께 모여 거나하게 술을 마신 게 10년도 더 된 것 같다. 한국에 있는 저들끼리도 애 키우고 사는 게 바빠 자주 못 만난다니 위안을 삼아 보지만 갑자기 서글퍼진다. 친구들 생각이 나 인스타에 들어갔더니 요나님이 아카시아꽃 튀김 사진을 올려놓으셨다. 너무 예뻐 먹겠나 싶으면서도 침을 꼴깍 삼키고 있다. 나도 다음번에 꽃을 따다 튀겨볼까. 아이들이 먹어줄까.


내가 한결같이 좋아하는 음식은 따로 있다. 떡볶이다. 요조를 더 좋아하게 된 건 그녀의 글발도 성실한 자세도 아니고 <아무튼 떡볶이>와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에서 내비친 떡볶이를 향한 그녀의 사랑 때문이다. 나에게 떡볶이는 질릴 일은 없겠지만 혹여나 그런 순간이 올까 봐 매일 먹지 않을 뿐인 음식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내가 떡볶이를 먹고 싶은지 정확히 짚어낼 수 있다. 물론 언제든 누군가 내 앞에 떡볶이 한 접시를 들이댄다면 거절할 수 없겠지만.


뉴욕에서는 주로 포장된 떡볶이를 먹어야 해서 가끔은 포장마차에서 먹을 수 있는 비닐을 씌운 쑥색 그릇에 내어 나오는 떡볶이가 그립다. 고등학교 때 학원 앞 포장마차에 팔던 떡볶이는 굵기가 자그마치 바나나만 했는데 그만큼 굵어진 허벅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야자나 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면 하루가 끝나기 전에 홀린 듯이 꼭 그 앞에 서곤 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덧붙이자면 떡볶이에는 예나 지금이나 진심인 편이라 식은 떡볶이는 되도록 먹지 않는다.


원래는 번역을 오래 하려면 건강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려고 한 건데 어째 먹는 얘기만 한 거 같다. 결론은 잘 먹고 오래 번역하겠다는 얘기.


https://taling.me/Talent/Detail/35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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