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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Feb 05. 2021

장조림을 졸이며 한 생각

아침에 일어났더니 온몸이 뻐근했다. 며칠 동안 요가를 건너뛰어 그런 건지, 무리해서 그런 건지 겉은 뻐근하고 속은 물컹했다. 당기는 음식을 먹으라는 물리치료 선생님이 말이 생각났다. 스테이크는 별로였고 딱히 생각나는 음식은 없었다. 그때 며칠 전 초대받아 간 집에서 맛있게 먹었던 갈비찜이 생각났다. 집 근처 마트에 갔더니 마침 괜찮은 고기를 팔고 있었다. 장조림을 하면 딱 좋겠는 고기도 보여서 함께 사 왔다.


핏물을 빼기 위해 일단 물에 넣어 놓고 재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조금 천천히 요리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과정 하나하나에 시간을 들이고 싶었다. 간장이 간당간당해 장조림은 아무래도 오늘 조리지 못할 것 같았지만 아쉬운 대로 바로 전 과정까지 마친 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가끔은 부엌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다. 작정하고 들어가 암 생각 없이 그냥 요리에만 집중한다. 모니터 화면 안에 갇혀 있던 나를 끄집어내 부엌 창 너머로도 눈길을 주고 생각이 떠다니게 놔둔다. 일할 때와는 달리 억지로 무언가를 찾아내려 하지 않아도 되어 좋다.    


번역 하고 있는 책이나 써야 하는 글, 읽고 싶은 책 생각은 접어두고 그냥 요리에만 집중한다. 모니터 화면 안에 갇혀 있던 생각이 잠시 잠이 들면 그 틈을 타 무의식 언저리에 놓여 있는 생각이 스스로를 건져올린다. 오늘은 조금 거창한 생각을 품어본다. 생각의 씨앗은 나의 적정 노동시간이다. 언젠가 내가 머리속에 뿌려두었던 씨가 발아하나 보다. 


프리랜서인 나는 직장인과는 달리 나의 하루를 원하는 대로 운용할 자유가 있다. 나에게 돈보다 중요한 자유다. 돈보다 자유가 중요할 뿐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모든 문제는 늘 거기에서 시작되고 거기에서 마침표가 찍어진다. 내가 이러한 고민을 하지 않게 되는 날은 돈에서 자유로워지는 날이겠지.


그렇다면 하루에 몇 시간 일하면 좋을까? 감히 4시간이라고 말해본다. 그런데 하루 4시간만 일한다는 누군가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엄청난 수고가 들어 있다. 그 정도 일하고도 연봉 몇 억을 번다는 어떤 사람은 분명 그 단계까지 도달하기 위해 남들보다 몇 배나 많은 노력을 쏟았을 것이다. 내가 바라는 삶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그 시간을 채우고 싶다. 연봉 몇 억을 위해 남들이 시도했다던 그런 방법을 쫒아 그 시간을 채우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보통 하루에 조금 일하거나 아예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과 동일시한다. 돈이 많다면 왜 그렇게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하겠는가. 경제적으로 넉넉해질 때, 가령 복권에 당첨될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하던 일을 그만두는 것이다. 일이 자아실현보다는 돈벌이 수단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정확한 경계는 나 자신도 모른다. 복권이 당첨되면 알 수 있으려나. 그동안 자아실현의 수단이라고 당당하게 말했지만 너무 쉽게 그만두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그 순간 앞에 얼마나 굳건하게 내 일을 지킬지 장담할 수 없지만 그전까지는 나의 방식과 정도를 지키며 하루 네, 다섯 시간 일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더 할 수 있는데 왜 안 하냐는 시선쯤은 가볍게 물리치고 나의 시간을 사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자 자아실현의 수단으로써 내 일을 운용하려면 이 둘 간의 결코 메워지지 않는 간극을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 거다. 남들이 뭐라 하든 혹은 내 안의 나약한 자아가 흔들리든 나는 이 정도에 만족한다고 말할 수 있는 뚝심을 장착한 채.


다음 날 간장을 사 와서 장조림을 졸였다. 간장이 졸아 들수록 어제 했던 생각도 뾰족하게 다듬어졌다. 내가 일의 수명을 가늠하고 하루에 투입할 노동 시간을 자꾸 생각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아이들이 한참 어여쁠 때 더 눈에 담아두고 싶어서.


《육아가 한 편의 시라면 좋겠지만》에서 저자 전지민은 “일상의 일부를 떼어내 ‘여행’이라 이름을 붙이면 평소보다 더 자주 아이의 목소리와 눈빛에 반응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일상의 일부를 툭 떼어내 쉬이 여행을 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목소리와 눈빛에 반응하는 일은 하루 중 언제라도 할 수 있다. 내가 기꺼이 시간과 곁을 내어주면 가능한 일이다.


여전히 내 시간을 쪼개 아이들에게 내어주는 데 인색한 나이지만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 지금의 나를 돌아봤을 때 남을지도 모르는 후회를 줄이기 위해 지금 내가 무얼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내가 하고 싶은 일뿐만 아니라 내가 아이와 하고 싶은 일, 아이가 나와 하고 싶다는 일에 대해. 아이가 하루에도 10장이 넘게 그려주는 그림에 보답하려면 최소한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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