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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Feb 02. 2021

집에서 일하는 아빠

코로나가 우리 집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신랑의 재택근무다. 신랑이 나처럼 집에서 일하는 아빠가 된 것이다. 신랑으로서는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넉넉하게 볼 수 있으니 좋은가 보다. 나는 나 혼자 먹던 달짝지근한 간식을 신랑과 나눠먹게 된 기분이다. 아깝다는 게 아니고 나누니 기쁨이 두 배가 되었다는 그런 훈훈한 얘기. 


신랑과 나는 서로의 양육 스타일에 참견하지 않는다. 그냥 서로 자연스럽게 조율이 된다고 해야 하나. 나는 엄마가 엄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각자의 성정을 따르는 게 옳다고 본다. 가뜩이나 지킬 게 많은 육아에 내 성격까지 바꿔가면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는 않다. 엄해야 하는 지점만 같다면 누가 그런 역할을 맡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보다는 신랑이 더 엄한 편이지만 그건 신랑의 육아 스타일일 뿐 억지로 맡은 역할이 아니다. 너무 과하다 싶을 땐 내가 적당히 조율하는데 대체로 신랑도 자신의 성격을 따를 뿐이다.


엄마가 엄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데에는 아빠가 집에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적기 때문에 아이들과 멀어질 수 있어서 그렇다는 이유가 따라오지만 그건 너무 가부장적인 시대의 생각 아닌가 싶다. 아이들과 평상시에 소통이 잘 이루어지는 한, 아빠와 아이들과의 사이는 문제없다. 사춘기 때 또 한 차례 고비가 오겠지만 지금 아빠와 아이들과의 거리는 엄마와의 거리보다 특별히 멀지도 좁지도 않다. 


나는 신랑에 비해 아이들에게 허물없이(?) 대하는 편이다. 아이들을 원체 좋아하는 성격을 내다 버리지 못해 그렇다. 엄하게 다뤄야 하는 이슈들이 있고 그런 문제 앞에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건 맞지만 쓸데없이 아이들에게 엄하게 대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조금의 권위는 갖고 싶다. 나는 친구 같은 엄마는 꿈꾸지 않는다. 종종 ‘나는 친구 같은 엄마예요’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아이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친구의 역할을 할 때도 있겠지만 엄마는 애초에 자식의 친구가 될 수는 없다. 사춘기가 되면 엄마에게 모든 고민을 털어놓는 자식이 있을 리 만무하며 모든 고민을 털어놓는다고 친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엄마는 그냥 엄마의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아이들은 엄마인 나를 더 따르지만 분명 아빠와 더 가까워지는 시점도 찾아올 거다. 엄마와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며 추억을 쌓는다면 아빠와는 특정한 사물을 매개로 추억을 쌓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그 사물이 책이었다. 아빠와의 추억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아마 일요일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빠는 언니와 나를 데리고 교보문고에 갔다(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에게 휴식을 주기 위한 아빠의 전략이었을지도 모른다). 서점에서 구입한 책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버스 정류장 옆 간이매점에서 아빠를 졸라 무언가를 사 먹은 기억은 난다. 버스 정류장에 일던 흙먼지 냄새와 매연 냄새도. 아빠의 손을 잡고 서점을 나와 바라보던 하늘은 어린 날 나의 어떤 하루에 새겨져 있었다. 


아빠는 늘 책과 가까웠는데 그렇다고 우리 집이 아동전집이 쫙 깔려 있고 그런 학구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그리고 엄마가 그걸 읽기를 강요했다면 나는 책을 싫어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꾸준히 책을 곁에 두는 삶을 유지하고 있는 건 숨 막히지 않았던 분위기 덕분일 것이다. 중학교 때에는 동네 책 대여점에 가서 《퇴마록》이나 《태백산맥》 같이 10권이 넘는 책들을 빌려와 가족 모두 돌려가며 읽었다. 《다락방의 꽃들》, 《세상의 모든 딸들》 같은 책은 내가 직접 골라 읽었는데 거기에 야한 얘기가 나오면 아빠가 내가 이 책을 읽는 것을 아나, 하며 괜히 뜨끔해하기도 했다(근데 생각해 보면 야한 내용은《태백산맥》에도 많이 나온다).


아빠는 내가 미국에 오기 전까지도 생일이면 늘 책을 선물해 주셨다. 내가 요청해서 받은 책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아빠가 직접 고른 책이었다. 가끔은 아빠의 단정한 필체도 담겨 있는. 미국에 오니 그걸 받아볼 수 없어 아쉽다. 다음에 한국에 가면 아빠랑 꼭 서점에 같이 가봐야지. 


내 책장에는 내가 어린 시절에 보던 책이 두 권 꽂혀 있는데 그중 하나인 《느티나무》의 뒷면에는 “1990년 10월 8일. 교보문고에서 아빠가 사주심”이라고 적혀 있다. 1990년에 나는 아홉 살이었다. 참으로 오래 전이구나 실감하게 만드는 건 책의 가격이다. 무려 1,800원이다. 짜장면이 1,30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 책이 내 기억 속에 있는 날 구입한 책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빠의 손을 잡고 서점에 간 날이 딱 그 날 하루뿐이었을지도 모르지만(아닐 거라 믿고 싶다) 나에게는 선명하게 각인이 되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첫째 아이가 지금 둘째 아이 나이 때 신랑은 출퇴근을 했기 때문에 아이를 드문드문 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신랑은 그 나이 때 아이가 얼마나 떼를 썼는지 자꾸 깜빡한다. 하지만 하루 종일 그걸 다 받아 낸 나는 그 기억이 몸에 새겨져 있다. 코로나 때문에 당분간 집에서 일하는 아빠가 된 신랑은 그 때의 나처럼 둘째 아이의 떼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데, 그 사실은 나에게 큰 위안이 된다. 누군가 나의 노고를 알아주기를 바랐던 걸까. 집 안에 있는 또 다른 어른의 존재는 뜻밖의 긍정적인 지점을 


내가 아빠와 책을 함께 떠올리는 것처럼 아이들은 아빠와 레고를 함께 떠올리게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사물이 그들을 이어줄지는 모른다. 어린시절의 내가 그랬듯 우리 아이들도 아빠와 저만의 추억을 쌓기를 바란다. 그럴 수 있도록 내가 가끔 빠져줘야겠다. 나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하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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