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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Jan 20. 2021

쉿! 방해하지 마!

토끼는 혼자 있을 곳을 원한다. 혼자서 조용히 책을 읽을 장소를 원한다. 나 혼자 있을 곳이 필요하다며 선을 그어 놓고 그 안에 들어가 “아무도 이 선을 넘어오지 마!”라고 외친다. 그러고는 이내 책의 세계에 빠진다. 하지만 선 밖에서 곧 하하, 호호 소리가 들려오고, 선 안에 스스로를 가둔 토끼는 엄마의 따뜻한 품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와 간식, 친구들과의 공차기 놀이를 떠올린다. 결국 모두를 선 안으로 들인 토끼는 남들과 어울리면서도 가끔은 방해받지 않고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순간이 있음을 깨닫는다.


내가 작업한 두 권의 아동도서 중 하나인 《쉿! 방해하지 마!》의 내용이다.


평소 때처럼 별생각 없이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다가 지금의 나를 그린 것 같아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소음 속에서 일하는 거 정말 지긋지긋해, 나도 좀 조용한 데서 일하고 싶어, 라며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는 내가 그림 속의 골 난 토끼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나도 토끼처럼 아이들과 잘 놀아주다가도 가끔은 방해받지 않고 나 혼자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나의 하루는 그런 순간들의 연속이다. 그림책 속의 세상처럼 따뜻하고 온화하고 김이 모락모락 나지는 않지만.



엄마가 된다는 것은 장소에 관계없이 아이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일이다. 어디에 가든, 무엇을 하든, 아이와 나를 연결하는 끊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에게 오기 전에 아이는 어디에 있었을까. 엄마가 태어날 때부터 자기를 품고 있었던 줄 아는 딸아이의 사고 회로는 전염성이 있어 나까지 금세 물들여버리고 만다.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저 멀리 반짝이는, 이미 사라져 버린 별의 나이처럼 오래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내 아이를 바라보면 이렇게 애잔한 걸까?


아이가 어디에 있든 이제는 아이 없는 나를 상상할 수 없다. 지금의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도. 사랑에 빠진 사람이 으레 그러하듯 맛있는 음식을 봐도 좋은 풍경을 봐도 아이가 생각난다. 특히 무엇을 하든 1+1처럼 나를 따라다니는 첫째 아이는 존재감이 상당하다. 엄마를 “그저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단계는 동생에게 물려주고 이제는 제법 나의 든든한 대화 상대가 된 첫째. 우리는 어느덧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사이가 되었다.


따뜻한 커피에 케이크 한 조각을 차려낸 내 옆에는 포크를 들고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딸아이가 있다. 혼자서 천천히 음미하며 먹는 케이크도 좋지만 딸아이와 마주 보며 함께 먹는 케이크도 정말 좋다. 정말 맛있다, 그치를 연발하며 경쟁하듯 찍어대는 포크질에 케이크는 1분 만에 우리 앞에서 사라지고 말지만 다음에 또 사다 먹자며 손가락을 거는 순간도 정말이지 좋다. 헤벌쭉 벌어진 아이의 표정에만 집중할 수 있는, 둘이서 온전히 함께하는 시간이다.


인터넷이 안 되어 일을 할 수 없던 날이 있었다. 검색과 인터넷 사전에 의존한 채 번역을 하는 나로서는 인터넷이 안 되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하려면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걸 핑계 삼아 일을 접었다. 아이는 웬일이래 하는 휘둥그레 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기분 좋게 외쳤다.


“엄마랑 놀자!”


비록 금세 인터넷이 돌아와 다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나는 그 순간을 잠시 뒤로 미뤘다. 하루에 일을 조금 덜 한다고 일정에 큰 무리가 가는 것은 아니므로. 생각해 보면 모든 일이 그럴진대 나는 늘 내 일을 먼저 하느라 급급했다. 아이의 요구는 나의 일에 방해가 되는 무언가로 여겨 볼멘 목소리로 마지못해 들어주곤 했다. 내가 아이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듯 아이 또한 나와의 연결성을 어찌하지 못해 그랬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무리 가족일지라도, 엄마와 자식 사이일지라도 서로 함께 보내는 시간뿐만 아니라 각자의 시간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이가 이해하게 될 때까지 나에게 필요한 건 알면서도 져 주는 마음, 아이 쪽으로 추를 살짝 기울여주려는 마음일 거다. 내 눈에는 무한 반복처럼 보이는 놀이도 아이에게는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 그러기에 엄마와 그 다름을 나누고 싶어 한다는 것도 조금만 아이에게 곁을 내어주면 알게 된다.


아이 앞에서는 전부 아는 척할 필요도,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아이가 다 가르쳐줄 터이니 선행 학습은 필요 없다. 내일은 또 같은 인형을 갖고 놀겠지만 조금 다르게 노는 법을 아이는 가르쳐줄 것이다. 나는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나의 속도가 아닌 아이의 속도에 맞춰. 이제는 안다. 그러다 보면 아이는 가끔 나에게 방해받지 않고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도 내어준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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