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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Apr 30. 2020

떼돈을 벌지는 못하겠지만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번역가의 서재'를 취재하고 싶다는 의뢰가 들어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죄송합니다. 서재가 없어서요" 하고 거절하지만, 정말 없어서 거절하는 거라고는 믿지 않는 눈치다. 믿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 참고로 내 작업 공간은 이렇다. 책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주방, 오른쪽에는 거실. 앞에는 텔레비전, 옆에는 소파, 발밑에는 멍멍이. 주부미가 철철 넘쳐 난다.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권남희


제목이 와 닿지 않아 자꾸 미루고만 있던 이 책을 드디어 읽고 말았다. '권남희'. 이 이름 세 글자가 자꾸 나를 유혹했으므로 읽지 않고서는 못 배겼던 거다.


생각보다 발랄한 소재들, 300권이 넘게 번역한 노장(?) 번역가답지 않은 젊은 문체에 역시 괜히 사랑받는 번역가가 아니구나 싶었다. 번역과 관련된 글을 더 많이 기대했기에 조금 실망하려던 차에 다 읽고 나니까 왜 자꾸 다시 읽어지고 싶은 거지? 하며 빠져드는 묘한 매력.


하긴 번역에 대한, 번역가의 일상에 대한 책은 이제 시중에 많이 풀렸으니 굳이 거기에 하나 더 보탤 필요는 없겠다 싶다. 50이 넘은 여성 번역가의 번역 이외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집순이 그녀의 모습에 겪하게 공감했다가 갱년기를 홀로 건넌 슬픈 이야기에는 울 엄마를 뒤돌아 보았고 그녀가 밝힌 자식과의 막역한(?) 관계 속에 나와 딸의 모습을 비추어도 봤다.


자신을 깎아내리는 구슬픈 유머를 구사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호쾌함을 잃지 않는 문체가 노라 애프런의 글을 떠올리게 했다. 문체는 억지로 만든다고 생기는 게 아닌지라 책을 읽는 내내 그런 문체를 닮았을 그녀를, 그녀의 삶을 자연스럽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책을 번역해도 역시 번역으로 떼 돈을 벌 수 없는 거였다. 그녀의 일상 곳곳이 그 증거였다. 그럼에도 물론 그녀는 충분히 즐겁고 행복해 보였지만 나는 아직까지는 번역으로 돈을 더 벌고 싶다는 욕심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물론 그러려면 책 번역은 바이 바이하고 돈이 되는 기술번역 가령 특허나 법률 번역 쪽으로 전향해야겠지만 이제 책 쪽으로 거의 돌아선 나는 그런 문서를 매일 들여다볼 자신이 없다.


작년까지만 해도 가능할 거라고, 돈만 많이 번다면 땡큐지, 했는데 아이가 모양에 맞게 블록을 껴 놓는 게임을 하면서 별표를 억지로 삼각형 혹은 동그라미에 끼어넣으려고 낑낑대며 소리 지르는 걸 보며 아차 싶었다. 나란 인간 역시 그렇게 억지로 쑤셔 넣는다고 아무 데나 들어갈 수 없도록 태어났다는 걸, 아이가 아직 그것도 모르냐며 나에게 버럭 소리 지르는 것만 같았다.


물론 이러다가도 정말 돈에 눈이 멀어서 어떤 결정을 할지 모르는 나라며 이런저런 몽상 속을 헤맨 끝에 돈을 얼마나 벌어야 나 스스로 만족할까, 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20대의 나는 빨리 취업해서 돈을 벌고 싶었다. 대학시절 과외로 버는 정도의 수입 말고 진짜 돈을 벌고 싶었다. 회사 생활은 그 맛에 했을 것이다. 신입사원 시절, 교육만 받고 있을 뿐인데 설 보너스로 과외를 몇 달은 해야 벌 수 있는 돈이 순식간에 입금되었다. 이 회사에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마약에 더 취하지 않도록 스스로 뛰쳐나오기는 했지만.


프리랜서로 일하는 지금은 그때에 비해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 아이를 돌보는 일이 300만 원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쳐도 그 돈이 실제로 생기는 건 아니다. 통장에 액수가 찍히고 종합소득신고를 할 때 자료로 제공되는 실체가 있는 돈만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겐 의미가 있다. 돈이 있어야 아이들 맛있는 것도 사주고 장난감도 사주고 그러니까.


욕심을 부리고 싶지는 않다. 다만 조금일지언정 꾸준히 벌고 싶다. 지금 같은 시대에 티끌모아 태산은 시대착오적인 인간의 마인드이겠지만 난 약간 구식인 면이 있어서 내 나름대로 아날로그적으로 대처하고 싶다. 계속하다 보면 조금씩 새로운 길이 보일 거라는 알 수 없는 낙관주의도 넉넉히 쟁여둔 상태다.




얼마나 벌어야 만족할지는 결국 나도 모른다.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기에. 회사 생활을 할 당시 돈을 많이 벌기는 했지만 그만큼 씀씀이가 커지는 바람에 늘 돈 부족 현상에 시달렸었다. 돈이 많아지니 하고 싶은 것도 많아졌고 스트레스를 받는 나를 위해 이래저래 셀프 선물을 많이 하던 때였다.


이제는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거의 없기에 그런 지출이 거의 없다. 아이들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책을 사는 걸로 풀고 있고. 책 백권 사봤자 명품백 하나 값도 안 된다(물론 백 권을 한 번에 사는 위인은 못됩니다). 아무튼 지금의 나는 이런 단출한 삶이 좋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어머 나도 점점 권남희 번역가처럼 되고 있네, 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 좋아해 본다. 그녀는 "유일하게 좋아하는 일,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일이 직업이라는 이 은혜로운 상황을 맞게 된 건 글쓰기와 독서를 하며 존재감 없는 시절을 꿋꿋하게 살아낸 과거의 나 덕분이리라."라고 말한다.


그런 그녀가 이제 행복을 말한다. 귀찮지만 행복해볼까,라고. 하지만 나는 그녀가 떼돈을 벌지는 못할지언정 충분히 행복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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