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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Feb 27. 2021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을까?

어느덧 50권가량의 책을 번역했다.

그런데도 나의 연봉은 15년 전 신입사원 때 받았던 연봉의 절반에 못 미친다.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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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이러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고 지금도 좋아하고 있지만 단순히 명예나 자아실현 같은 것에 기대어 이 일을 지속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


이 일로 어느 정도의 돈을 벌려면 일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한 자 한 자가 다 돈이므로. 어떤 일이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내가 가만히 있는데 굴러 들어오는 돈 같은 건 없다. 문제는 내가 하루에 일 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며 그렇지 않다 해도 기계가 아닌 이상 하루 종일 번역만 할 수도 없다는 거다. 그러니 돈을 더 벌려면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수밖에.


무언가를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는 10년을 내다본다면 지금부터 뭔가 다른 걸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의 세상은 한 가지 직업으로 먹고살 수는 없으니까. 동시에 여러 일을 벌이는 걸 잘 못하는 나이지만 그래도 다른 걸 기웃거려 본다.


그런데 남들이 하는 일들을 이리저리 둘러봐도 딱히 내 입맛에 맞는 게 없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권하는 책을 읽다 보면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벌써 뭔가 시작한 것처럼 흥분된다. 그런데 그 흥분은 책을 읽는 순간만 지속되는 짧은 흥분, 책을 덮는 순간 날아가 버리는 휘발성 높은 흥분이다. 현실의 나는 아이를 돌보며 내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또 다른 일을 저지를 에너지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끈질기게 내 어깨에 올라타 있다. 정말 뭔가를 해야 할까.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나를 너무 몰아붙이는 건 아닌가. 아무것도 안 해도 넌 충분히 가치 있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된다.


한편으로는 지금 내 일이 어느 정도 안정권에 접어들었기에 이런 고민을 할 여유도 생긴 게 아닌가 싶다. 당장 다음번 일이 언제 들어올지 몰라 초조해하던 때를 생각하면 감개무량한 고민일 거다. 하지만 또 언제 일이 끊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프리랜서 일이란 게 그렇다.


지금 내 일에는 아무런 이상 전선이 없다. 그 어느 때보다도 걱정 없이 잘하고 있다. 이곳 뉴욕에서 연이 닿은 새로운 출판사에서 달러로 번역료를 받으며 소설 작업 중이고, 그 출판사와 한 권이 더 예정되어 있어 여름까지는 일 걱정이 없을 듯하다. 게다가 브런치를 통해 새로운 출판사에서 의뢰도 들어왔고 예전에 냈던 책이 재개정되어 역서가 한 권 늘어난 것은 물론이거니와 얼마 안 되지만 공돈도 들어왔다.

 

그런데도 나의 고민은 끝이 없다. 인간이란 원래 그런 것인가. 걱정이 없으니 걱정을 사서 한다. 일이 없을 때에는 없어서 걱정, 일이 잘 들어오니 또 다른 고민을 찾아서 걱정. 지금 번역 중인 소설에 내가 잘 모르는 레퍼런스가 많이 나와서 그것도 걱정이다. 총과 농구, 오토바이. 셋 다 진짜 모르겠다. 구글 이미지를 파고 또 파도 아직까지 모르는 게 있다. 미래 걱정을 할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내 앞에 놓인 원문 걱정을 하는 게 맞을 거다.


이 나이 먹어서까지 진로 고민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으나 왠지 앞으로도 20년 정도는 더 해야 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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