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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Mar 27. 2021

1사 분기 번역 작업 정리

호러 소설 작업 중인 가운데, 오늘 드디어 뒷부분의 초고까지 끝마쳤다. 출판사 사장님께서 감사히도 중간 결산을 해주셔서(내가 한 만큼 먼저 번역료를 결제해주는 시스템) 앞부분은 막바지 수정까지 완료한 상태다. 오늘 오전 마지막 문장을 딱 치고 나니까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다. 번역을 끝냈다는 벅찬 감정도 있었지만 호러 소설이 이런 따뜻한 결말을 보여줄 줄은 몰랐기에(물론 중간에는 피비린내 때문에 코를 쥐고 작업해야 했다) 전율이 일었다.


어떤 번역가는 호러나 스릴러 소설을 번역할 때에는 스스로 긴장감을 느끼기 위해 일부러 다 읽지 않고 번역을 시작한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해보려고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첫째, 우선 다 읽지 않았더니 전체적인 감이 잡히지 않았다.


둘째, 내가 궁금해서 못 참겠다.


이 소설은 호러 소설이지만 원주민 문학으로 봐야 할 거다.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에서 알게 된 루이스 어드리크의 소설을 전부 사서 읽은 건 그 때문이다. 소설의 줄거리를 관통하는 원주민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번역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번 소설을 위해 유튜브에서 원주민 관련 영상은 죄다 찾아본 것 같다. 옛 원주민의 의식들을 보여주는 영상, 그들이 현대 사회에서 겪는 문제, 신세대 원주민의 톡톡 튀는 영상까지. 모르는 게 참 많았다.


이제 수정을 거듭하는 일만 남았다. 호러 소설 전문가 박산호 번역가님의 소설을 쭉 읽어볼 차례다. 어떻게 하면 더 등골이 오싹하게 번역해낼지 고민 또 고민해야 할 거다. 아무래도 처음 하는 분야라 걱정이 되지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번역한 지 10년이 되니 호러 소설도 번역하고 감회가 새롭다. 지금 이 소설을 마치면 같은 출판사에서 또 다른 소설이 예정되어 있기도 하다. 게다가 이번 책을 진행하는 가운데 브런치를 통해 또 다른 책을 의뢰받기도 했다.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올린 보람이 있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감수성이 필요한 작업을 의뢰했다는 사실이 살짝 뿌듯하다. 아니 실은 많이.


크게 돈이 되지는 않지만 10년쯤 하니까 그래도 심적으로 조금 여유가 생긴다. 내가 뿌려둔 씨앗이 곳곳에서 발아하기 때문일 터다. 번역가라면 프리랜서라면 곳곳에 씨앗을 심어두는 일을 잊지 말아야 할 거다.


이번 달 말, 적어도 다음 달 초에는 작년에 작업했던 <뉴욕의 숨어 있는 예술작품(가제)>이 출간될 예정이다. <햄버거 하나로 시작된 기업이 어떻게 세계 최대 프랜차이즈로 성공했을까?>라는 무지 긴 제목의 역서 이후 간만에 출간되는 역서 같다. 사실 작업했지만 아직 출간이 되고 있지 않은 책은 5권 정도 더 있다. 번역료는 다 받았기에 아쉬울 건 없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빨리빨리 출간이 되기를 바란다. 큰 걸 보고 뒤를 안 닦고 있는 찜찜한 기분이랄까. 출판사 사장님들, 어서어서 제 역서를 세상에 내보내 주세요.


그럼 이상으로 1사 분기 번역 작업 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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