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고기자리 Apr 06. 2021

일 하기 싫은 날

일하기 싫다. 어쩌다 찾아오는 ‘일하기 싫어병’에 걸렸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일하기 싫은 날은 어지간해서는 찾아오지 않는데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마감이 곧이다 보니 대충 끝났다는 안도감과 마감이 끝나고 어서 며칠이라도 좀 쉬어보고 싶는 마음이 앞당겨 찾아오는가 보다.


보통 한 권의 책을 마감하고 나면 다음 책의 마감이 코앞이 아닌 이상 하루 이틀은 일은 쉰다. 김목인 작곡가는 공연이 끝나고 나면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못한 감정, 연주 후 흥분 같은 것이 남아 있어 어떤 식으로든 해소가 필요하다 했다. 몸과 마음이 분리된 채 어느 한쪽이 아직 들떠 있고 한쪽만 가라앉아서 간극이 생긴다고. 나도 그런 걸까. 책 한 권을 마치고 나서 치르는 특별한 의식 같은 건 없지만 쉼 없이 달려온 나의 몸, 팔과 어깨, 엉덩이는 좀 쉬어달라고 호소한다.


일단 좀 쉬어보기로 한다. 노트북을 덮고 하루쯤은 쳐다보지 말자고 다짐한다.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일단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할 거다. 밀린 집안일도 해야 하고. 그런데 나에게 쉼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몰입하는 것이므로 나는 또 책을 집어 든다. 책을 읽다 보면 글이 쓰고 싶어 진다. 대단한 글도 아니면서 머리를 쥐어짜고 그렇게 또 몸을 혹사시킨다. 이쯤 되면 어디까지가 쉼이고 어디까지가 일인지 경계가 애매해진다. 좀처럼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번역가에게는 한 권의 책을 마무리하는 시점의 경계 또한 불분명하다. 내 쪽에서는 다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저 쪽에서 그러니까 출판사나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오면 아무리 단순한 업무일지라도 끝났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내 업무가 완전히 끝나는 시점은 도대체 언제란 말인가. 그건 돈을 다 받고 나서도 한 동안 끝나지 않기도 한다. 그러니까 책이 출간되어 나오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 물론 그 후에도 100퍼센트 마음을 내려놓을 수는 없지만 책이 출간되면 최소한 내 일은 다했다는 홀가분함은 있다. 내 손을 떠났으니 나머지는 출판사가 알아서 처리해주리라는 심정이다.


책이 출간되는 순간을 요새는 인터넷 서점의 알람 기능이 말해준다. 출판사나 에이전시에서 연락해주기 전에 알람이 먼저 뜬다. 출간되는 역서가 너무 많아서 그런 걸까, 출판사나 에이전시에서 일일이 말해주지 않는 경우가 늘면서 나는 점점 더 알람 기능에 의존하고 있다. 그들이 잊고 있을지도 모르는 증정본을 챙겨달라고 먼저 연락하는 것도 나다. 증정본은 단순히 공짜 책이 아니다. 번역가에게 증정본은 작업의 결과물이기에 당연히 받아 볼 권리가 있다. 그런데 주지 않는 곳도 있다. 계약할 때 자세히 보지 않고 나중에 후회한 경우도 꽤 된다.


한 번은 에이전시에 증정본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는데 출판사에서 보내준다는 걸 이미 거절했다는 답 메일을 받았다. 나의 의견을 묻지도 않은 채 다른 번역가들이 보통 안 받으려 한다기에 이번에도 그랬다고 했다. 분명 계약서에는 증정본을 주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나는 다시 한번 부탁해봤지만 양해 부탁드린다는 거절의 답변만 돌아왔다. 아, 번역가의 낮은 위상이란. 이럴 때면 어김없이 슬퍼진다. 내 작업의 결과물을 받는 건데 이렇게 비굴해져야 하다니.  


부모님이 마련하신 내 책장에 꽂아야 하니 아쉬운 건 나다. 내 돈 주고 사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잊고 말자 했지만 찝찝한 기분은 어찌할 수 없다. 번역료를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증정본 1권 달라는 건데. 그 책은 내가 했던 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성형수술이 대거 시행되었던 책이라 기분이 더 묘했다. 애초에 인연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인터넷에 올라온 평은 좋았으니 아예 미련을 버리기도 쉽지 않다. 그런 책은 마감을 하고 나서도 기분이 영 좋지 않다.


떠나보낸 책은 잊고 이제 내 손에 쥐어진 번역을 해야 할 때다. 하지만 한 번 집 나간 마음을 끌고 와 책상 앞에 앉히기란 쉽지 않다. 꼭 보고 싶었던 영화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데다 돈도 안 되는 글은 왜 자꾸만 쓰고 싶은 건지. 오늘 도착한 책은 빨리 읽어달라고 손짓하고 있고 아이들 장난감은 또 왜 그렇게 정리하고 싶은 건지. 그렇다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은 딱 하루만 쉬어보기로 한다. 그러다 보면 관성 때문에라도 책상에 앉게 될 테고 그러다 보면 관성 때문에라도 작업 폴더를 열고 번역을 하게 되겠지. 이것이 내가 ‘일하기 싫어병’을 극복하는 방법이라는 건 안 비밀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사 분기 번역 작업 정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