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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Apr 15. 2021

번역하다 정말로 모르겠는 문장을 마주칠 때

번역을 하다 보면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모르겠는 문장을 맞닥뜨릴 때가 있다.


정말로를 네 번이나 쓴 까닭은 진짜로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는데도 그 뜻이 명확히 와 닿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그저 검색과 질문이라 할 수밖에 없겠지만. 시간과 정성을 들여 찾아보고 다시 보고 또 보고를 반복했는데도 모르겠을 때 노승영 번역가의 말에 따르면 번역가들은 "얼렁뚱땅 의역"을 하게 된다고 한다. 흠, 그러고 보니 나도 그런 짓을 저지른 적이 심심찮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번역을 탈고할 때가 다가오니 그런 조급증이 뒤를 바짝 따라온다.  선에서  이상의 검색을 멈추고 얼렁뚱땅 의역에 만족하고 넘어간 문장들이 곳곳에 지뢰처럼 숨어 있지는 않을지 입이 바짝 마르고 속이 탄다. 나는 충분히 생각하고  생각했다, 되뇌어 보고 300쪽에 달하는 원고의 모든 문장에 같은 정신 상태로 임했을리가 없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변명도 해본다.


그렇기는 하지만 지금은 내가 번역이라는 작업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계이다. 조각가가 대략적인 형태를 잡고 계속해서 세부적인 모습을 다듬어나가는 것처럼 한글을 세공하는 이 단계에서 나는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이 마지막 과정을 위해 지난한 번역 과정을 인내하는 것인지도. 내 안의 장인 기질이 마음껏 날개를 펼치는 이 순간, 나는 내가 진짜로 이 일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게다가 수정 작업을 핑계로 소설을 마음껏 읽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사치가 어디 있을까.


이번 번역을 하면서도 역시나 단어의 몰랐던 쓰임을 많이 알게 되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English였다. 우리가 아는 그 English! 말이다. 분명 영어라는 뜻은 아닐 텐데 기본 사전에는 또 다른 뜻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른 사전을 뒤진 끝에 English라는 단어에 spin이라는 뜻이 있다는 걸 알아냈다. 하! 진짜 English의 세계는 파도 파도 끝이 없다.


번역을 하다 보면 안다고 착각했던 것들의 진실을 마주하기도 한다. 가령 빗방울이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과는 다른 모양이라는 걸 나만 몰랐을까. 우산과 함께 단골처럼 등장하는 그림에서 빗방울은 늘 그런 모양이지만 사실 빗방울의 모양은 표면장력 때문에 구형이나 납작한 타원형에 가깝다고 한다.



,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  동안 동고동락한 번역문을 떠나보내 줘야  때다.   있는 만큼 했으니 이제는 편집자의 손에 맡겨야 한다. 아차, 그런데 two-track 그러니까 시골에서 경운기 따위가 다니는 (가운데는 풀이  있고 바퀴가 지나는 쪽에만 도로가  있는 ) 일컫는 용어를  찾겠다. 혹시 아시는 분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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