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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Apr 26. 2021

브루클린을 좋아하지만

브루클린을 좋아하지만 이 동네와 나는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을 곧잘 하곤 한다. 아이들 두 명쯤은 앞이나 뒤에 거뜬히 태운 채 탄탄한 허벅지 근육을 자랑하며 쌩 하고 지나가는 이곳의 부모들과는 달리 나는 자전거 위에 올라탄 내 몸뚱이 하나 안전하게 운반하기가 버거운 사람이다. 눈이 오면 아이들을 데리고 부지런히 썰매를 타러 공원을 찾는 사람도 못 된다. 그들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일들이 나에게는 늘 또 하나의 과제다. 그들과 나 사이를 가르는 건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애써 다독여보지만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이들의 삶에 내가 습자지처럼 스며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어제는 둘째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밀며 첫째 아이를 데리러 갔다가 집에 열쇠를 두고 왔다는  깨달았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길래 급하게 다른 외투로 갈아입었었는데 그러면서 열쇠를  외투 주머니에 넣고  거였다. 비밀번호를 띠띠 입력하면 되는 한국의 무수한 아파트와는 달리 뉴욕에서는 아직까지 열쇠를 이용하는 집이 훨씬  많다. 디지털 세상을 거부하는 오래된 집들의 아날로그함은 겉보기엔 운치 있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불편함을 안겨주는 존재에 불과하다.   챙기느라  우산 따위는 가뿐히 무시할 수밖에 없는 엄마에게는 더더욱.


회사에서 곧장 오겠다는 남편을 기다리며 아파트 로비에 앉았다. 오가며 자주 보이던 흑인 할머니  명이 인사를 건네길래 집에 열쇠를 두고 나왔다고 구구절절 설명했더니 


"You're locked out!"  


하신다.


원어민 사용자가 아닌 나는 또다시 괴리감에 쌓인다. 미국에 온 지 6년이 넘었건만 급할 때 내 입에서 불쑥 나오는 말들은 한국에서 쓰던 영어, 마치 모국어처럼 입에 착 붙어 있는 말들뿐이다. 남편을 기다리며 이 건물에 살고 있을 다른 사람들을 생각한다. 한국으로 치면 아파트에 해당하는 이 집에는 한 층에 16세대가 살고 있다. 우리 옆집에는 할머니 한 분이 살고 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할머니의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에 이어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이웃과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사실은 먼 쪽에 가깝다 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한다. 그건 내 삶 하나만 챙기기에도 바쁜 일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공통적인 주제나 삶이 별로 없어서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한국의 익명성에 이미 익숙해져 있던 나의 자아 탓일지도. 나와는 달리 이곳의 주민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지내기도 한다. 간혹 복도에서 토론 비슷한 대화가 이어지기도 하고.


이사 온 지 몇 개월 되었을 무렵 똑똑하는 소리가 나길래 문을 열었더니 옆집 할머니가 서 있었다. 할머니는 우유 안 필요하냐며 먹다 남은 듯한 우유통을 번쩍 들어 올리셨다. 약간 당황한 나는 우유가 집에 많다고 대답했다. 할머니는 푸드 스탬프에서 우유를 받아왔다고 했다. 이웃까지 챙겨주시는 그 따뜻한 마음이 행여 다치지 않을까 나는 우유가 너무 많다고 변명했지만 문을 닫고 나자 이내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푸드 스탬프에 의존해야 할 만큼 할머니의 상황이 안 좋은 것인가, 나는 너무 무심한 이웃인가 하는 걱정을 가장한 연민을 느끼며.


할머니의 집과 우리 집의 정문은 니은자로 나 있으며 한쪽 벽을 접하고 있다. 가족 없는 할머니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갈까. 하루 종일 소음과 괴성이 난무하는 우리 집과는 전혀 다른 시간이, 전혀 다른 온도의 공기가 흐를 거다. 우리 윗집에는 또 어떠한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는 몰라도 어떤 개가 살고 있는지는 안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간혹 새벽 세 네시 무렵에도 개가 마룻바닥을 찰파닥 밟으며 뛰는 소리가 지나치게 선명하게 나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나의 이웃들도 수상한 1L 집 사람들이라고 한 번쯤 우리 이야기를 했을까? 아이들의 괴성과 엄마의 고음이 끊이지 않는 집이라고.  


우유가 똑 떨어져 집 앞 마트에 가려고 길을 나선다. 할머니가 주시려고 했던 우유를 생각하며. 6분을 걸어 도착한 마트 선반에서 꼬북칩이 보인다. 하, 나는 이곳과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곳에 정을 줄 틈은 많을지도 모른다. 내가 벽을 치지 않는 한 말이다. 한국에서 보낸 시간보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많아져 내가 옆집 할머니의 나이가 되어 있을 무렵에는 나도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 있을까. 내가 이곳을 좋아하는 것만큼 이곳도 나를 좋아해주고 있을까. 그나마 다행이다. 이곳이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서. 화려한 뉴욕이지만 평범한 이곳이라면 나도 어떻게든 정을 붙이고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으며 꼬북칩과 신라면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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