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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May 12. 2021

사지 않는 마음

생일부터 결혼기념일, 엄마의 날까지 내 선물은 밀려 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사지 않는다. 돈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다. 사고 싶은 게 없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사실이다.


지난 2월 내 생일 때 신랑은 사고 싶은 걸 사라 했으나 딱히 사고 싶은 게 없었다. 오해 마시라. 나도 얼마 전까지는 꾀나 물질주의적인 사람이었다. 그 증상은 회사에 다닐 때에는 극에 달해 고생한 나를 위해 명품백을 지르고 비싼 옷도 마구마구 사 입었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일단 정장을 입을 일이 없는 데다 큰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으니 자연히 물건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일이 줄었다. 가장 결정적인 건 내 삶의 만족도였다.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니 허전함을 물건으로 채우려는 욕심이 사라진 거다.


물건 욕심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다. 나에게 필요한 물건이 보이면 주저하지 않고 구입한다. 눈여겨보던 물건 중 마음에 드는 게 나오면 품절이 되기 전에 곧바로 구입한다. 망설이는 데 시간을 쓰지 않는다. 싸다고 할인한다고 여러 개를 쟁여놓는 대신 세일하지 않더라도 내가 가치 있게 소비할 수 있는 물건이나 옷에는 소비를 한다.


내가 이렇게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란 건 신랑의 공이 크다. 신랑은 늘 무조건 사라고 하는데 그런 말을 자꾸 듣다 보면 오히려 살 생각이 없어진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신랑의 고단수 전략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필요하면 무조건 사라하고 뭘 사든 태클을 걸지 않다 보니 무슨 날이라고 악착같이 뜯어내려는 욕심도 점차 희미해진다. 사지 않는 마음을 장착하게 된다. 한결같이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근거 있는 자신감은 나를 사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눈치챘겠지만 맞다. 이 글은 결국 자랑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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