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의 동네책방에는 커피를 팔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매주 책방에 들린다. 커피를 마시러 가는 건 아니다. 책방에는 책을 보러 간다. 이 당연한 사실에 의문이 들기 시작한 건 언론을 통해 개성만점의 한국 서점들을 접하면 서다. 브루클린의 책방들은 한국의 서점처럼 복합 문화공간이나 라이프스타일 공간을 추구하지 않는다. 카페나 술집, 베이커리, 잡화매장을 운영하지도 않고 굿즈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지도 않는다. 트렌드를 따르지도 유행에 민감하지도 않으며 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하지만 동네에 기반을 마련한 책방들은 30년째, 50년째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곳의 책방과 이곳의 책방은 뭐가 다른 걸까? 나의 동네책방 탐방기는 이 같은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었다. 나에게 동네책방은 브루클린을 대표하는 상징물이자 나를 살게 하는 무엇이었다. 브루클린 하면 누구는 브루클린 브릿지를, 누구는 브라운스톤이 줄지어 있는 주택가를, 누구는 브루클린 버거를 떠올릴지 모르지만 이곳에 산 지 3년이 넘은 지금 나에게 브루클린은 동네책방이 많은 곳이다. 이곳에서는 체인점을 낼 만큼 성공한 동네서점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헌책방도 저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골목길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 그리고 그 애잔한 모습에서 나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뉴욕으로 건너온 처음 2년의 시간은 내 기억 속에 구체적으로 남아 있지 않다. 햇병아리 프리랜서로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또 한 아이의 엄마로서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역할들을 나름대로 잘 해내 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것 밖에는. 낯선 타지에 있다는 걸 실감할 여유도 없이 일상은 바삐 흘러갔고 나는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채 조각 시간을 모으고 모아 번역을 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돌아보니 나는 없고 아이들과 번역만 있었다. 어느덧 훌쩍 커 버린 두 아이와 60권에 달하는 역서가 그 결과였다. 정말 그게 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지난 7년 동안 내 삶을 지킨 또 다른 존재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책과 그것을 파는 공간이 있었다. 그건 예술하러 뉴욕에 온 것이 아닌 내가 나에게 던져준 유일한 구명조끼였다. 퀸즈에 살 때에는 동네에 위치한 유일한 서점, 아스토리아 북숍을 틈만 나면 들락거렸고 브루클린으로 이사 온 뒤로는 곳곳에 자리한 서점들에 홀딱 반해 이 동네에 눌러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다 할 동네 친구 하나 없던 나에게 서점은 위로의 공간이었고 안식처였다.
지금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윈저 테라스와 파크 슬로프라는 동네는 맨해튼 못지않게 물가가 비싼 지역이다. 이곳에 당분간 뿌리를 내리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를 두고 여러 번의 망설임이 있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남들처럼 뉴저지나 업스테이트로 이사 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고민 앞에 휘청이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아이들의 행복을 지금 나의 행복과 맞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걸어서, 혹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가면 눈앞에 나타나는 서점들은 나의 젖줄과도 같았으므로 이기적인 나는 이곳에 남기로 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다는 클리셰를 뒤에 엎고.
이 책방 순례기는 결국 브루클린의 동네서점들을 향한 나의 러브레터다. 서점 간판만 봐도 가슴이 콩닥 뛰는 한 사이 그를 살아가게 하는 동네서점들에게 바치는. 사랑하면 더 알고 싶고 알고 나면 더 사랑하게 된다고 했던가. 은밀한 욕망과 궁금증에서 시작되었지만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던 서점들의 몰랐던 역사를 알아가면서 나는 이 서점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정말로 이 동네를 떠나지 못할 것 같다.
서점을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이 글이 멀리 있는 책방으로 당신을 옮겨다 주기를, 책이 여전히 멀게 느껴지는 당신이라면 이 글을 읽고 동네책방의 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를 얻게 되기를, 동네책방을 운영하는 당신이라면 이 글을 읽고 그런 독자에게 조금 더 손을 내밀게 되기를 바란다. 자, 그럼 이제부터 시작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