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의 동네서점을 소개합니다.
225 Smith St, Brooklyn, NY 112131
마법이 일어나는 곳
지하철 F를 타고 버겐 스트릿 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까만색 바탕에 분홍색과 흰색의 강렬한 로고가 눈에 띈다. 브루클린 내에서도 힙한 지역에 속하는 코블 힐에 자리한 책방, 이렇게 강렬한 손짓으로 부르는 책방을 그냥 지나치기란 불가능하지 않을까.
코블 힐은 관광지는 아니지만 비교적 부유한 가족들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로 조용하고 고즈넉한 주거 지역에 매력적인 로컬 상점들이 어우러져 멋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서점 주인 엠마는 이 동네 토박이 출신으로 <Modern Lovers>, <All Adults>, <The Vacationers > 등 수많은 책을 출간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다. 게다가 그녀의 아버지는 <고스트 스토리> 등 수많은 호러 소설을 남긴 피터 스트라우브(우리나라에는 스티븐 킹만 알려져 있지만 피터 스트라우브 역시 스티븐 킹만큼이나 유명한 호러 소설 작가다)다. 최근에 <The Only Good Indians>이라는 호러 소설을 번역하면서 누군가 이 소설의 작가를 피터 스트라우브에 비교하며 칭찬한 것을 보고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하고 찾아봤더니 바로 그 이름이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엠마는 디자이너 남편 마이클과 함께 2017년 이곳에 책방을 열었는데 그 스토리가 재미있다. 원래 이 근처에는 북 코트(Book Court)라는 오래된 서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35년 동안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던 이 책방은 주인 부부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한 때 이 서점에서 일하며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책방을 방문했던 엠마 부부는 이 책방을 대신해 코블 힐에 새로운 서점을 열기로 한다. 그리하여 365일 문을 여는 새로운 서점, 북스 아 매직(서점 이름은 Books are uniquely portable magic이라는 스티븐 킹의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이 탄생했으니 부부는 이 책방을 자신들의 세 번째 자식으로 여긴다.
마법의 세계로 인도해줄 것만 같은 서점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쪽 서가에 엠마의 책들이 책등이 아니라 정면을 본 채 누워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인본인 경우가 많고 아니더라도 언제든 부탁하면 주인장이 사인을 해준다고. 자신의 책을 마음껏 진열하고 판매할 수 있는 책방을 갖고 있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생각하니 부러움이 한없이 밀려온다. 서점 입구에는 제품 디자이너인 남편의 작품도 판매되고 있는데 에코백과 티셔츠, 머그 등은 단골 상품이다.
스텝이 선정한 책들을 소개하는 코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반스 앤 노블 같은 대형 서점 평대에 깔린 뻔한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숨어 있는 옥석들을 소개하는 이 자리에는 소수인종 작가들의 책이 앉아 있을 때가 많다. 스텝들이 정성들여 적어놓은 추천사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내가 이 책방에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것은 다름 아닌 책장이다. 맨 하단에는 눈길이 잘 가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서인지 아래 단이 살짝 경사져 있다. 북 코트에서 쓰던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하니 이제는 사라진 그 서점과 북스 아 매직은 여러모로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가게를 휘집고 다니며 소설, 비소설, 건축, 예술 등 다양한 섹션 별로 정리된 책들을 야금야금 꺼내본다. 한 때 인기를 끌었던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더불어 영어로 번역된 <82년생 김지영>도 이제 브루클린 서점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서 번역본을 통해 처음 접한 작가들의 원서를 찾아보는 것도 번역가인 나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 그러다 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 있고 저 혼자 책을 보고 있을 아이가 잘 있나 슬슬 불안해진다.
아이를 찾으러 가는 길, 이제부터 진짜 마법이 시작된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엠마가 자신의 아이들을 그리고 동네 아이들을 위해 신경 써서 만든 공간이 나타나는데 건축가 친구의 도움을 받아 완성했다는 이 공간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의 마음을 빼앗기 충분하다. 아기자기한 책장, 은은하고 멋스러운 벽돌벽과 큼지막한 창, 비가 내리는 듯한 느낌의 조명, 핑크빛 Books Are Magic 네온사인이 어쩜 이렇게 잘 어우러지는지.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는 푹신한 소파와 빈 체어가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어서 책 읽기 정말 좋았는데 이제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이 앉아서 책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줄었다. 뭐, 아이들은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 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곤 하지만.
아동 코너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리딩 눅(reading nooks)이다. 코로나가 터졌어도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 공간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구석 자리를 좋아하는 건 아이들만은 아니지 않은가. 나 또한 보는 사람만 없으면 살포시 들어가 앉아 있고만 싶어 진다. 아, 이런 서점이 집 근처에 있다면 매주 아니 매일 가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보여주기식 공간이 아니라 진짜 주민들을 위한 공간이어야 오래도록 사랑받으며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이 서점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홈페이지도 서점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책방은 자신만의 컬러와 로고를 고수하는 브랜딩이 잘 된 동네 서점 중 하나다. 커뮤니티 스토어가 기분 좋게 낡은 손때 묻은 책장 같은 느낌이라면 북스 아 매직은 힙한 동네에 위치한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서점답게 발랄한 아이덴티티를 자랑한다. 여느 서점처럼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프트 카드를 판매하고 있으며 에코백 판매 수익금을 일부 기부하는 등 지역 사회를 위한 활동도 잊지 않는다. 매 번 내가 이제 그만 가자고 아이의 손을 잡아끌어야 하는 이곳. 작정하고 아이가 지칠 때까지 내버려 두면 아이는 이곳에 얼마나 있으려 할까? 이번 책 마감이 끝나면 한 번 날 잡아 시도해볼까 한다.
최근에 인스타그램에서 보니 서점 앞에 작은 무료 라이브러리를 만들어두었다고 한다. 아, 어쩜 이렇게 마음 씀씀이도 착할까. 거의 새 책이나 다름없는 책들을 장르도 다양하게 꾸며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주인장은 책을, 그리고 이 동네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분명하다.
코로나가 한 바탕 휩쓸고 가면서 인디 서점들이 하나둘 문을 닫을 때, 엠마 스트라우브는 직원을 한 명도 해고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지만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 음식을 제외하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게 책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어요. 사람들은 주위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즐거움을 얻기 위해 책을 필요로 하죠. 그러니 우리는 아직까지는 바쁘답니다."라고 말하는 그녀. 실제로 서점이 문을 닫고 온라인으로만 주문을 받을 때 그녀의 서점은 물량을 다 채우지 못할 만큼 주문이 쇄도했다. 이 서점이 지역 사회에 얼마나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지 보여주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녀는 말한다. 동네책방은 어쩔 수 없는 변화를 받아들이며 이에 대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코로나가 터진 후 부부는 "Stay Safe, Read Books"라고 적힌 티셔츠를 만들어 출판 산업 자선 기금(Book Industry Charitable Foundation)에 절반을 기부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녀의 책방에서 더 많은 책을 사는 것으로 이에 보답하고 있다. 이야말로 진정한 선순환 아니겠는가.
인스타그램용 사진의 배경으로 전락하고 있는 한국의 수많은 동네 책방이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다. 지금처럼 책을 읽는 사람만 책을 사서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동네 책방들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을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키우는 데 일조하고 읽지 않는 사람을 읽는 사람으로 만드는 등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의 서점들은 지역 사회에 기반하고 있다기보다는 개인의 꿈으로 시작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책방 문을 열려고 하면 동네 사람들이 와서 "책방 해서 먹고살 수는 있어요? 커피도 좀 팔지." 이런 소리를 한마디씩 보태곤 한다. 지역 사람들의 진정한 사랑방이 되기에는 간극이 너무 크다. 오래 살아남는 서점이 되려면 지역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니즈를 해소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강구해야 할 것이다.
대구에 문을 연 협동조합 동네책방, "책방 아이"를 보며 북스 아 매직을 떠올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책 읽는 동네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책방은 벙커 공간을 꾸며 동네 아이들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덕분에 처음에는 쭈뼛대던 부모들도 동네 사랑방 드나들듯 이 책방을 오가고 있다고. 물론 모두가 그런 책방을 실현할 수는 없겠지만 일회성 굿즈나 이벤트가 장기적인 생존을 향한 정답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지역사회에 단단히 뿌리내린 북스 아 매직이라고 매출이 마냥 그린라이트인 것은 아니다. 인스타그램라이브를 통해 수시로 책을 읽어주고 추천하는 엠마 스트라우스는 오늘 서점에 사람이 없다고, 어서 책방에 들려 이 책 좀 사라고 귀엽게 종용하기도 한다. 그런 인간적인 호소를 하는 서점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이는 책이 멀게 느껴지는 이들을 위해 책방의 문턱을 낮추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의 장난기 어린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책방이 생각보다 재미있는 곳임을 알게 될 테니까. 한국의 수많은 서점이 북스 아 매직처럼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간으로 정착하기를 멀리서나마 간절히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