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의 동네책방을 소개합니다
445 Gold St, Brooklyn, NY 11201/4 Fulton St, NY, Brooklyn, 10038
세계를 품은 독립서점
2020년 3월. 뉴욕의 코로나 사태가 발발할 무렵 문을 연 비운의 책방이 있었으니 바로 맥널리 잭슨의 새로운 지점이었다. 브루클린의 대표적인 쇼핑몰, 시티 포인트(City Point) 안에 맥널리 잭슨이 입점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 누구보다도 반가웠지만 코로나 때문에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지점은 바이러스의 위협을 피해 가지 못하고 잠시 문을 닫았다가 9월에 다시 문을 열었다(11일 동안만 문을 열었다고 한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이어진 거대한 밤색 책장을 한 가득 메운 책들. 영화 속에 나올 법한 계단을 따라 2층까지 이어진 이 서점은 브루클린에 위치한 책방들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5,300 제곱 피트의 규모의 이 책방을 채우기 위해 4만 파운드의 책장이 배달되었다고 하니 지금 이곳에 얼마나 많은 장서가 꽂혀 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맥널리 잭슨은 워낙 유명한 독립서점으로 이미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다. 2004년 12월, 소호에 가장 먼 문을 연 맥널리 잭슨은 이제 뉴욕 내 4개의 지점을 갖춘 대표적인 독립 책방으로 자리 잡았다. 사라 잭슨이 책방 문을 열 때만 해도 미국 내 서점들은 대형 체인점의 공세에 밀려 하나 둘 문을 닫고 있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맥널리 로빈슨이라는 서점을 여러 개 운영하고 계신 부모님을 보고 자라 기업가다운 기질이 뛰어났던 그녀는 과감하게 뉴욕 한복판에 맥널리 로빈슨을 연다(그 후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따 맥널리 잭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2018년, 350,000 달러였던 렌트비를 800,000 달러로 올려달라는 건물주의 요청에 맥널리 잭슨의 소호점이 이전하게 될 거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500,000달러의 렌트비 인상은 정말 너무하지 않았나. 사라 잭슨은 동네 책방 문을 닫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마존도, 코로나 바이러스도 아니라 말도 안 되는 렌트비 인상이라는 따끔한 기사를 뉴욕 타임스 사설란에 싣기도 했다. 다행히 650,000달러에 건물주와 합의를 본 사라는 그 뒤 새로운 지점을 열 거라고 공표를 했고 약속대로 2018년, 월리엄스버그 지점이, 2019년에 씨포트 지점이, 2020년에는 시티 포인트 지점이 문을 열었다.
이제 브루클린 시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된 시티 포인트 맥널리 잭슨은 방대한 규모에 걸맞게 미스터리, 호러, 역사, 정치, 요리, 경제, 건강, 자서전 등 거의 모든 장르의 도서를 갖추고 있다. 희귀본이나 고서도 취급하며 시대와 지역 별로 분류해 놓은 서가도 있다. 1층 계단 아래 자리한 큐레이션 코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이곳에서 소개하는 책을 전부 가져오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기가 쉽지 않다. 이 지점에 가면 문구류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노트와 펜 구경만 해도 시간이 후다닥 가버리는 데다 피식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아기자기한 카드 역시 시선을 앗아가기 충분하다.
최근에 이곳에 혼자 방문할 일이 있었다. 아이들 없이 서점에 간 것이 얼마만이던가. 문구의 유혹에서 간신히 벗어나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니 이미 내 책장에 자리한 책들이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최근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나온 <Minor Feelings>는 물론 정말 공감하며 읽은 <Crying in H mart>도 보였다. 2층의 빼곡한 책들을 찬찬히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결국 1층도 채 다 보지 못한 채 서점을 나섰다. 그건 내 손에 들린 한 권의 책 때문이었는데 그 책은 바로 데보라 레비의 신간 <Real Estate>였다.
기다리던 책을 우연히 만나는 건 내가 서점 순례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으로 이 책을 빨리 읽고 싶어 손가락이 꼼질대는 바람에 더 이상 책방 안에 머물 수 없었던 것. 시티 포인트 내에는 트레이더 조처럼 뉴요커들에게 인기 있는 저렴한 마켓도 있고 기타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많이 위치하고 있으나 그날은 그런 곳에 들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당장 꺼내 들리라 다짐하며 쫓기듯 서점을 나설 수밖에.
맥널리 잭슨은 모든 지점이 2층으로 운영되는 등 널찍한 공간을 자랑한다. 가장 먼저 문을 연 소호 지점도, 허드슨 강가에 자리한 씨포트 지점도 전부 2층으로 다른 독립서점에 비해 널찍한 편이다. 소호 지점은 유일하게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 누군가를 만날 때면 자주 이용했는데 지난번에 가니 역시 카페는 사라지고 문구류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코로나로 책방의 풍경이 조금씩 변하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책방이 아예 사라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씨포트 지점에는 원래 맥주를 파는 바도 함께 오픈했는데 지난번에 갔더니 역시 코로나 때문에 테이크 아웃만 가능하게 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지점은 7,300 제곱 피트로 맥널리 잭슨 중 가장 큰 규모이며 역사지구로 지정된 자갈길과 허스든 강변이 내려다보여 색다른 운치를 선사한다. 윌리엄스버그에 위치한 맥널리 잭슨은 소호 지점과도, 씨포트 지점과도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화이트 톤에 은은한 조명이 한층 경쾌하고 젊은 느낌이다. 공장을 개조해 만들었다던데 천장의 마감을 그대로 살려 동네 분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맥널리 잭슨은 동네책방이라 부르기에는 이제 그 규모가 너무 커져버린 느낌이지만 해외 문학 코너를 고유의 강점으로 내세우는 개성 강한 독립서점임에 분명하다.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유럽 등 대륙별로, 아일랜드, 스페인, 대만, 러시아, 한국 등 국가별로 정리된 문학이 책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동네책방이 성공하려면 결국 "자기만의 색깔"이 있어야 한다는 걸 맥널리 잭슨은 보여주고 있다.
맥널리 잭슨은 책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꾸 다시 찾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우연한 방문이든 입소문이든 처음 방문한 사람이 다시 방문하게 할 정도로 좋은 경험을 선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1,000여 곳의 독립서점이 문을 닫을 당시 문을 연 맥널리 잭슨이 이렇게 번창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미국을 넘어서 세계를 끌어안은 이 독립서점은 대형 서점이 크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고유하고 독특한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사라 맥널리는 아마존은 엄청난 양의 책을 팔지만 아마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 책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며 아마존에 책 문화를 맡겨두는 건 끔찍한 아니냐고 반문한다. 동네책방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며 미디어에서 소개하지 않은 책을 들여놓고 일주일에 6-7회 작가와의 담론, 북클럽과 스터디 클럽 등을 진행한다. 책방은 사람을 모이게 한다고 믿고 있는 그녀. 이 단단한 주인장이 운영하는 책방은 독립서점도 체인점을 낼 수 있다는 걸, 옆으로도 위로도 팽창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긍정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가족들과 주말에 시티 포인트에 갔다가 우연히 맥널리 잭슨 로고가 박힌 임대 공간을 보고 반가웠던 때가 떠오른다. 시티 포인트는 타깃, Century 21 등이 입점한 상업적인 공간이었기에 이곳에 독립서점이 들어설 리가 없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분명 맥널리 잭슨이었다. 사실을 확인한 뒤 내 머릿속을 가장 먼저 파고든 건 임대료 걱정이었다. 이 건물의 임대료 역시 만만치 않을 텐데. 소호 지점이 3년 전 그랬던 것처럼 위기에 처하면 어쩐단 말인가.
그 무렵 우연히 마주한 기사는 나의 걱정을 달래주었으니 이 지점은 임대료 걱정은 안 해도 된단다. 사라가 직접 구입한 것이었는지 지인이 건물주였는지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임대료 때문에 문을 닫을 일은 없을 거라 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지만 일단 안심이 되었다. 책에 푹 빠지고 싶은 날 마구 헤엄칠 수 있는 이렇게 큰 서점도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니까. 반스 앤 노블 같은 뻔한 베스트셀러로 채워진 백화점식 서점이 아니라 신선한 지적 호기심을 불어넣는 책방, 머릿속에 박하사탕을 머금은 듯 화해지는 기분으로 나설 수 있는 책방이 필요한 날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