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 포 픽션(Center for Fiction)

브루클린의 동네책방을 소개합니다

by 물고기자리

15 Lafayette Ave, Brooklyn, NY, 11217


한밤의 나들이를 꿈꾼다면


홍대에 있던 카페 콤마를 연상시키는 센터 포 픽션에 가려면 우리집에서 지하철 G를 타고 풀톤 역에서 내리면 된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이 동네도 센터 포 픽션 덕분에 어느 새 친근하게 느껴진다. 공공도서관이 생기기 이전, 상업 도서관(Mercantile Library)으로 처음 문을 연 센터 포 픽션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소설을 주로 취급하는 비영리 단체로 원래 맨해튼 이스트 47번가에 자리하던 것이 2019년, 지금의 위치(포트 그린)로 옮겨왔다.


관장의 바람대로 브루클린 음악 아카데미(BAM, Brooklyn Academy of Music), 마크 모리스 댄스 그룹(Mark Morris Dance Group)이 인근에 위치하는 등 문화적으로 풍부한 환경을 곁에 두게 된 새로운 센터 포 픽션은 동네 작가들에게 공간을 임대해 주고 카페를 운영하며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하는 등 커뮤니티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문을 연 지 1년 만에 터진 코로나 사태 때문에 그 바람은 물거품이 되었고 이곳을 작업 공간으로 이용할 야심 찬 생각을 품고 있던 나 또한 얼마나 좌절했는지 모른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 이 책방의 모습


코로나가 터지기 전 센터 포 픽션은 책을 몇 권 골라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읽을 수 있는 브루클린 내 거의 유일무이한 장소였다. 뉴욕의 책방들은 한국과는 달리 커피나 차를 취급하지 않고 오롯이 책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여러 권의 책을 고른 뒤 한 권씩 천천히 읽어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랬기에 이곳에서 책을 몇 권 집어 들고 자리에 앉을 때면 종로 영풍문고 안에 있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골라온 책들을 찬찬히 읽던 시절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곤 했었다.


몇 달 전 방문했을 때 한 번에 10명만 수용한다는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카페 공간은 전부 사라진 채 아동 도서들로 메워져 있었고 행사가 이루어지던 오디토리움으로 이어지는 묵직한 문은 굳건히 닫혀 있었다. 그 문이 영원히 닫힌 상태로 남아있지는 않기를 바라며 얼마 안 되는 다른 방문객들과 다소 허전한 마음으로 책을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 방문할 때 샀던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시키기>, 몇 달 전 사온 <Goodbye to All That>


1년에 180달러를 내면 센터 포 픽션의 멤버십 회원 자격이 주어졌는데 회원들은 이곳의 방대한 책을 마음껏 빌려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2층에 위치한 널찍한 공간들을 무료로 이용하고 이곳에서 판매하는 책을 할인받을 수도 있었다. 이곳은 한 달에 250달러만 내면 작가들에게 조용한 공간을 임대해 주기도 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사실상 하루 종일 이용할 수 있으니 뉴욕 어디에서도 이처럼 저렴한 코워킹 공간은 없었다.


이 모든 혜택을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하니 우울해지려던 찰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10월 1일(우연히도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부터 이 모든 혜택을 다시 오픈한다는 공지가 떠 있었다. 카페와 오디토리움 역시 다시 문을 열 예정이라는 반가운 소식도! 비록 마스크를 쓰고 백신 카드를 보여줘야 하지만 그래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적응해가는 책방의 용기에 박수를 치고 싶었다.


그렇다면 다시 가보지 않을 수 없는 법. 결국 나는 노트북을 덥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지하철로 향했다.



하지만 새로 오픈한다는 공지가 무색하게 지난번에 갔을 때보다 책방은 더 한산했다. 2층이 오픈했다고는 하지만 막상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였다. 스태프들의 활기찬 대화 덕분에 분위기가 조금 살아나기는 했으나 책방은 자고로 손님들로 북적되어야 하는 법. 아쉬운 마음을 안고 안 쪽으로 들어가 보니 카페는 여전히 운영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맞은편에 못 보던 것이 하나 생겼으니 일명 스토리 키오스크!


코로나 시대를 고려해서인지 센서 감지식으로 작동하도록 해놓았다. 1분짜리, 3분짜리, 5분짜리 이야기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욕심쟁이인 나는 세 가지를 전부 다 해보기로 한다. 1분짜리 위에 손을 갖다 대고 흔드니 짧은 시가 나오고, 5분짜리 위에 손을 올리니 꽤 긴 종이가 지지직 소리를 내며 쭉쭉 나온다. 내 앞의 기계가 내는 소리가 조용한 책방 안에 꽤나 크게 울려 퍼진다.


공짜 글을 가방에 알차게 챙긴 뒤 본격적인 책 탐방에 나섰다. 가장 널찍한 공간은 당연 소설들이 차지하고 있다. 새로 나온 소설뿐만 아니라 스테디셀러 소설과 독립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들도 잘 보이는 평대에 진열되어 있다. 오늘은 이곳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신간 코너를 어슬렁거리다가 almond라고 쓰여 있는 표지가 보이길래 설마 손원평 작가님의 <아몬드>인가 싶어 호기심에 표지를 찬찬히 살펴보니 정말 그 아몬드가 맞았다! 번역가 소개가 없는 것이 조금 아쉬웠으나 그나마 번역가의 note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녀의 책이 번역되어 나왔는지 몰랐는데 눈에 확 띄는 표지를 입고 누워 있는 것을 보니 내가 다 뿌듯했다.


소설 코너를 지나 다시 키오스크가 있는 쪽으로 가면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 에세이 코너가 나온다. 센터 포 픽션은 소설만 취급하지는 않는다. 한쪽에 요리나 에세이, 회고록 등 내가 좋아하는 장르를 죄다 모아두었으니 나는 이번에도 그 코너를 벗어나지 못한다. 반가운 책등이 보일 때마다 몇 번을 꺼내 본 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아동 도서 쪽으로 간다. 낮 시간이라 그런지 아이 아빠가 유모차를 밀고 아동 코너를 서성이고 있다. 나는 곧 다가올 아이 생일날 사줄 책이 없을까 찾아보다가 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을 한 권 발견해 계산대로 향한다.



1821년, 센터 포 픽션이 문을 열었을 때 연회비는 2달러에 불과했다. 공공 도서관이 아니라 개인의 자금이나 기부금으로 세워진 도서관이었다. 젊은 상공인들의 교육을 위해 월스트리트에 처음 문을 연 이 도서관에서 마크 트웨인 같은 작가가 강연을 할 때에는 너무 많은 관중이 모여 하루 밤에 두 번이나 강연을 해야 했다고 한다. 그 후 소장한 책의 수가 늘면서 로워 맨해튼에서부터 점점 위쪽으로 올라와 이스트 47번가까지 이동했다가 2019년 지금의 자리에 새로 문을 연 것.


2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회원수가 감소하는 등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꿋꿋이 살아남은 데다 현대적인 옷으로 갈아입는 등 시대의 변화에도 유연하게 적응해나가고 있다. 자신들의 현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조금 더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끊임없이 강구하며 작가들의 동네로 뜨고 있는 브루클린으로 과감하게 이전하기로 결정한 결단력이야말로 이 단체를 지금까지 살아남게 만든 요인 아니었을까.




2019년 말,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전 주중 저녁에 열릴 예정인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어린 두 아이가 있는 나에게 주중 6시는 참으로 애매한 시간이었으나 엘레나 페렌테의 나폴리 4부작과 줌파 라히리의 산문집을 이탈리어에서 영어로 번역한 앤 골드스타인과 <뉴욕은 교열 중>, <그리스는 교열 중>를 쓴 뉴요커의 책임 교열자 메리 노리스가 참석한다기에 안 갈 수가 없었다. 티켓값은 30달러. 하지만 30달러를 쿠폰으로 돌려주어 나중에 책을 살 때 할인받을 수 있게 해 주었으니 결국 강의는 무료였던 셈이다.


강의는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30분 넘게 지연되었지만 참석한 사람들은 한 손에 와인을 든 채 자기들끼리 밀린 담소를 주고받으며 그 시간을 기꺼이 즐기고 있었다. 거의 출판계 관계자처럼 보였으나 나처럼 호기심에 온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았다. 같은 번역가로서 어떠한 영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두 귀를 쫑긋 세웠지만 지금 내 기억에 남은 건 통통 튀는 귀여운 메리 노리스와 차분한 앤 골드스타인이 만들어낸 그날의 분위기뿐이다.


그들이 나누는 얘기를 100퍼센트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단테의 신곡을 이탈리아어로 읽어주던 골드스타인의 목소리는 잊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의 우정과 인연도. 젊은 시절 뉴요커의 카피 편집자로 만난 둘이 각자의 길을 가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읽고 쓰는 여성으로서 나의 삶의 궤적을 그려보기도 했는데, 이러한 행사가 다시 시작된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그때가 떠올랐나 보다.


홈페이지에 다시 들어가 확인해 보니 온라인으로는 그동안 행사가 쭉 이어져오고 있었다. 지난달에는 데보라 레비가 신간 <Real Estate>에 대해 얘기 나누었다고 한다. 이렇게 아쉬울 수가! 이제부터라도 자주 들어와서 확인해봐야겠다. 매 달 세 째 주에는 문학 번역가를 위한 지식 공유 세션이 진행되고 있는 듯한데 이번달에 진행되는 <How do we sustain a tralsation practice>라는 부제가 솔깃하다. 원하는 만큼, 5달러나 10달러를 기부하거나 아예 무료로도 등록이 가능하다.


나 같은 사람에게 행사에 참석하는 건 사실 한 밤의 나들이 같은 거라 직접 가는 데 의의를 두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이제 쉽지는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오디토리움이 다시 문을 열기 전까지 일단 온라인 행사에 만족하는 수밖에. 지금은 굳게 닫힌 그 문이 열리고 음악과 와인이 함께하는 행사가 다시 개최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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